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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80화


나는 학생을 보았다.

탈색모와 피어싱을 한 십대 청소년.

그믐날 꿈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고등학교 괴담 속에서, 시선이 없으면 사람들을 죽이고 시선이 있으면 굳어 있는 존재.

그러나 방법만 알아내면, 지성과 감성을 갖춘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세광특별시에 갇힌 고등학생 시민들.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렇다면 매번 그믐마다 백일몽 직원들에게, 재난관리국 요원들에게 비참한 꼴로 죽고 있는 그 모든 개체가….

‘…….’

나는 교복에 손을 올렸다.

세광공업고등학교에 의해 오염당한 내 상태는 섬뜩한 공포 대신 어딘가에 사로잡힌 듯 기이하게도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트리거로서 분노가 생기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공허한 상태로.

다행이었다.

이 아찔함이 덜해서.

그리고 계속 질문을 해갈 수 있어서.

넌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거야?

다른 애들은 다 바닥에 누워 있잖아

그런데.

너 때문이잖아

나 때문이라고?

나를 힐끗 본 인상 나쁜 학생이 미간을 찌푸리며 종이에 적는다.

너 양호실에다가 날 옮겨놨잖아

그 후로 졸업식이 아닐 때도

깨어나고 있다고

‘…!’

나는, 이 동급생을 양호실 빈 침대에 옮겨두고 치료를 받게 만들었다.

그리고 교복을 빌렸다….

‘그게 영향을 미쳤다고.’

‘검은 그늘 속에서’ 게임에 없던 기재라서인가. 아니면 침입한 오류가 학생으로 정식 편입되면서 빈틈이 생긴 건가?

…잠깐.

움직일 수 있는 건 너뿐이야?

더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야

바닥에 누워 있는

애들 사이사이에도 빈틈이 있던데

그게 움직이는 애들 자리였을까?

그랬을지도

도서관에 가끔 애들이 남긴 낙서가

있어

이름 같은 거

졸업식이 시작하고 나서

그 애들을 본 적 있어?

외관이 불량한 동급생은, 덤덤하게 내용을 적는다.

아니

그런 애들은 졸업식이 시작되면

강당에 시체로 있어

‘…….’

한빛도서관에 먹힌 것이다.

도서관을 나가지 못하는 애들은 계속 없는 단서를 찾아 도서관을 떠돌다가, 무언가 잘못된 규칙 위반 사유에 걸려서. 그 많은 애들이….

가슴이 찌릿거린다.

마치 절친한 친구가 무참히 살해된 것 같은 기이한 통증. 증오를 공유하고 공격성을 부추기는 듯이.

세광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공유하는 추모의 감정.

‘안 돼.’

나는 휩쓸리지 않으려 애쓰며, 심호흡 후에 근원적인 질문은 던진다.

왜 이 학교는 이렇게 된 거야?

모르는데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의심되는 점이나

수상한 점이라도 좋아

이렇게 되기 전에

무슨 징조 같은 건 없었어?

몰라

그냥 졸업식 전날 등교했던 게 끝이야

그리고 무슨… 모르겠어

난 그냥 수업 시작하고 잤는데

갑자기 정신 차리니까 야밤이고

졸업식을 하잖아

그리고 괴물이 된 선생님이

애들을 다 죽이지

그게 계속 반복되는데

동급생의 눈은 검게 가라앉아 있었다.

반항적인 외관의 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침착함과 무료한 체념이 그 속에 짙게 배어 있다.

어차피 이것도

또 졸업식이 시작하면 잊어버릴 거고

…….

아예 기억에 안 남아?

여기 갇혀서 못 나간다는 거

반복된다는 건 기억나지

그게 다야

상대가 글자를 눌러쓴다.

그러니까 전학생

그냥 나가

그 시선이 내가 들고 있는 도서관의 책을 향한다.

<2000년대 명작 호러 단편선>.

너도 그 책 찾았나 본데

그거 아무리 읽어도 변하는 거 없다고

변하는 것.

…….

잠깐만.

내가 이전에 졸업식을 다르게

진행했던 건 혹시 알아?

선생님을 죽였거든

뭐?

잘 생각해 봐

내가 나타났던 졸업식 이후에

다른 변화는 없었어?

학생의 동공이 약간 커진다.

지난 졸업식들의 경험을 비교해 보듯.

떠올리듯.

그러더니….

있어

‘…!’

선생님이 강당에서 더 빨리 출발해

선생님.

-참석하지 않은 학생에게 벌점을 주기 위해, 지금 선생님이 강당에서 출발합니다.

이 학교의 온갖 선생님의 상반신과 장기가 붙어 만들어진 괴물. 공포 게임의 최종장에 나오는 악령 같은 존재.

그 존재가 더 빨리 나온다고?

‘오히려 안 좋은 징조잖아.’

내가 침을 삼킬 때.

그리고…

그리고?

이건 그냥 우연일 수도 있는데

그 후로 양호실에는 한 번도

안 들어왔어

‘…!!’

‘선생님이 양호실에는 안 들어온다고.’

그리고 양호실은… 뒤뜰로 통하는 유일한 창문이 있는 곳이다.

‘…….’

잠깐.

혹시 그 선생님이 종이쪽지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아?

종이쪽지?

도서대출표 같은 거!

반으로 찢어진 상태인데

부적 같은 게 그려진 거야

확인해 본 적 없어

동급생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원하면

지금 확인해 볼 순 있는데

선생님들은 강당 주변에 있어

…….

해보자

부탁할게

알았어

따라와

그리고 동급생은 양호실 바닥에서 일어났….

쿵.

검은 실루엣이 동급생을 제압한다.

‘…!’

나는 반사적으로 해당 실루엣을 공격하려다가 깨달았다.

‘늑대 조장이야.’

그래.

늑대 조장이… 검은 실루엣으로 보이는 거다.

마치 그늘처럼.

그믐날, 학교에 오류로 진입한 탐사자들을 볼 때처럼 불쾌함이나 폭력적 충동이 치밀지는 않았다.

그냥 이질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험한 것.

외부의 것.

소통할 수 없는 것….

‘이래서 도망가려고 했구나.’

아니, 도망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늑대 조장으로 추정되는 검은 것을 순간 피하려던 무의식을 억누르고, 그에게 우리가 나눈 대화 종이를 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강당 주변을 탐사하려고 합니다.

위험한 장소로

주의를 요합니다.

그러자 동급생의 잡고 있던 실루엣이 사라진다.

‘후우.’

양호실을 나와 걸어가는 동급생과 내 뒤로, 검은 실루엣이 따라붙었다….

‘…….’

우리는 5층을 향해 천천히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4층에 진입하자 바닥에 진열된 3학년 선배들 틈으로는 꽤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동급생은 익숙해진 듯 그냥 발을 디뎠으나, 나는 찌릿한 가슴의 통증을 견디며 다시 한번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5층으로.

그리고.

[오, 맙소사.]

5층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왜 동급생이 ‘선생님들’이라고 지칭했는지 깨달았다.

[제법 미학적이군요.]

5층 바닥에 진열된 것은 학생이 아니었다.

어른.

그리고 이 학교에서 어른의 외관을 하고 있는 부류가 있다면 하나뿐이다.

선생님들이야

…선생님들.

그리고 그것들은 학생들처럼 멀쩡한 몰골이 아니었다.

‘…….’

녹아내린 상반신과 각종 장기.

얼굴이 반쯤 녹아내리거나 빼빼 마르거나, 도저히 생존해 있을 수 없는 상태의 기괴한 인체들이 눈을 뜬 채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치 ‘선생님’ 덩어리에서 분리되어 보관하듯이.

그중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살점 하나, 눈 하나, 머리카락 더미나 내장만 남은 선생님들도 있다.

…세광고등학교 학생인 나는, 토악질 대신 공포와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혹시 깨어나기도 해?

아니

바닥에서 떨어지지도 않아

그리고 눈치챈다.

‘손을 잡고 있어….’

아직 손이 남아 있는 인체들은 모두 굳게 손을 잡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맞서듯이.

‘…….’

5층은 지난번에 봤던 것처럼 살점과 부적으로 덮인 기이한 몰골이었으나, 살점들은 마치 생동감이 사라진 듯 점액이 바짝 말라 미라의 목구멍처럼 보였다.

부적은….

나는 그 모양을 보면서 확신했다.

‘그 부적이 맞다.’

뒤뜰에 묻혀 있던 부서진 유리 초롱 바닥. 그곳 부적의 찢어진 절반.

마치 그 완전한 모습이 투영된 것 같았다.

나는 해당 부적 중 하나로 손을 뻗었다.

만일 정말로 정식으로 근무하고 교육받은 재난관리국의 요원이 있었다면 부적의 의미도 읽어낼 수 있었겠으나, 나는 단지 그 완전한 모양만을 마침내 알았다.

붓글씨에 변이된 한자어.

도울 호.

[흠. 어딘지 익숙한 글자가 아닙니까, 노루 씨?]

……!

기억해 낸다.

-내 몸을 덮고 있던 무언가가 바닥에 쏟아진 것이다.

-마치 유리손포에 장전할 수 있을 것같이 생긴 투명한 구슬이었다.

-이거 그 게임 최종장 클리어 보상이구나!

같은 한자가 새겨진 유리구슬들.

내가 선생님을 사살하고 졸업식을 진행해 ‘검은 그늘 속에서’를 A급으로 클리어하고 깨어나는 순간.

침대에 흩어져 있던 클리어 보상 아이템.

‘…….’

그렇다는 건….

‘정말로 유리손포에 장전하는 용도였던 거다…!’

이 학교에 유리 초롱을 묻어두고, 학생들을 보호하려 했던 요원들의 소지품인 게 분명했다. 아니, 최소한 연관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이 괴담을 ‘학생을 살리는 방식’으로 클리어했던 자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면서 바깥으로 나온 건….

…….

‘혹시 학생 구조에 필요한 건가?’

확인해야 한다.

나가서 요원분들과 대화해 봐야겠다.

‘물론 일단은 얻을 수 있는 단서를 다 수집하고 탈출하는 걸 목표로.’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다시 심호흡하면서 5층을 한 번 더 살폈다.

그리고 봤다.

‘……저거.’

어둑한 5층의 저 끝.

강당의 문.

굳게 닫혀 손자국과 핏자국으로 엉망진창인 그 육중한 양문 앞에도 인체가 매달려 있던 것이다.

살점으로 당겨진 팔.

상반신만 남은 기괴한 인체.

‘학생은 아니야.’

옷이 분명 교복은 아니다.

그러나 거리 탓에 차림새의 식별이 어려웠다….

혹시 저것도 선생님일까?

모르지

들어가서 확인할 수 없잖아

들어갈 수 없다고?

혹시 꺼림칙함 때문인가 싶어서 나는 한 발을 떼어 5층의 말라붙은 살점을 디뎌보려 신중히 시도했다.

하지만 그 순간.

‘…!’

어마어마한 반감이 몸에 반동을 준다.

‘뭐야.’

그 반감의 출처도 즉각 깨달았고.

‘…부적.’

5층 벽에 덕지덕지 붙어 형상화된 부적들이, 학생들이 5층에 오는 걸 막고 있었다.

‘…….’

나는 물러났다.

선생님들한테

종이쪽지 같은 건 안 보이는데

힐끔, 5층 너머를 보던 반항적인 인상의 동급생은 종이에 휘갈기듯 글을 썼다.

저기 있는 것도 선생님이면

졸업식 때도 한 번 확인

그러다가 머뭇거렸다.

어차피 졸업식이 시작되면, 자신은 ‘검은 그늘 속에서’ 괴담이 활성화되는 그때부터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깨달은 것처럼.

나는 조심스럽게 답장했다.

그럼 손바닥에 적어가 줄래?

손바닥?

아예 적어놓으면 졸업식날

깨어날 때 남아 있을 수도 있잖아

상대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본다.

괜히 신경 쓰여서

한 번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동급생은 놀랍도록 빠르게 긍정했다.

약간 들뜬 것 같기도 했으나, 곧 그 기색은 빠르게 사라졌다.

기대감을 가지고 싶지 않은 듯이.

‘…….’

그리고 종이에 무덤덤이 적는다.

너 진짜 전학생은 아니지

맞다.

우리 학교에 왜 왔어

그 물음은 기대를 버린 듯하면서도 묘한 기색이 느껴졌다.

구조를 위해 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확률에 대한 의식이.

‘…….’

사실 몰라

꿈에서 어쩌다 보니까

온 건데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도 이 사태의 이유를 알아내고

없앨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볼게

명예 세광인으로 말야

나는 입고 있는 교복을 툭 쳤다.

네가 교복도 빌려줬잖아

동급생이 잠시 소리 없는 웃음을 바람 빠지듯 짓는다.

그러든가

그리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까

너 이름이 뭐야

…….

괴담에서 본래 이름을 말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짓이다.

하지만.

‘세광공업고등학교는 진입할 때 이미 이름을 적어야 하는 곳이니까.’

그리고 이 홀로 깨어 있을 수 있는 학생과의 신뢰 형성이 앞으로 관련된 비밀을 풀어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테니.

나는 적어내렸다.

김솔음이야

이름 한번 이상하네

넌 이름이 뭔데?

명찰 봤잖아

이결

1학년 4반

그래

이결, 잘 부탁해

나는 이결과 그렇게 정식으로 통성명했다.

* * *

양호실로 다시 내려온 후.

나는 심장 문신에서 되살린 오염을 다시 밀어넣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후우.”

내가 저렇게 검은 실루엣으로 보여도

이렇게 종이로 계속 소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긍정을 표했던 대로, 학생은 표정 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나 공격하거나 도망치지는 않는다.

그리고 늑대 조장은 검은 실루엣에서 다시 완연한 일행으로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문답은 다 읽었어. 침착하게 잘 물어봤던데. 그믐날에 이 어둠에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는 모양이구나. 설명해 볼래?”

“…예.”

그리고 내게서 ‘세광공업고등학교’에 대한 적당히 자세한 설명도 들었고.

하지만 가장 신경 쓴 건 이거겠지.

내가 갑자기 고등학생 괴담 주민으로 변한 것.

“재밌는 방법을 쓰는구나. 오염을 이용하는 거지?”

“…….”

“우리 회사가 그런 방향으로 고도화될 줄은 알았지만.”

늑대 조장의 가면 속 눈이 나를 훑는다.

그리고 턱을 매만진다.

“그래도 지금보다 발전은 발전이지. 현재는 일종의 치킨레이스거든.”

“…소원권을 타기 전에 오염되는가, 소원권을 먼저 타는가. 그렇게 말입니까?”

“그래. 똑똑한 용 사원.”

늑대 가면 아래 입이 호선을 그린다.

“물론 요령 있는 애들은 그 안에서도 사적으로 조절을 하지만 말이야.”

“…….”

본인을 포함해서 말이겠지.

“자. 도서관으로 돌아갈까. 그 학생은 길을 아는 모양인데 안내를 부탁하면 탈출하기 수월하겠네.”

“……예.”

나는 이결에게 부탁해 도서관의 다른 코너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정확히는 <2000년대 명작 호러 단편선>이 꽂힌 코너로 가는 방법을.

이쪽으로 와

다행히 기꺼이 안내해 주는 상대를 따라 걸으며, 우리는 학교 도서실을 통해 한빛도서관 다른 코너로 나가는 방식을 깨달았다….

“꽤 직관적인 방법이구나. 그렇지?”

“…예.”

그리고 머릿속에서 문득, 그런 의문이 떠오르는 것이다.

늑대 조장의 소원은 무엇일까.

치킨 레이스라고 표현할 정도로 소원권에 대한 인지가 있는 존재다. 지금 물어보면 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걸 이 존재에게 물어보는 건, 어쩐지 경비반장에 대한 실례로 느껴졌다.

그래서 입을 닫고 가만히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출발했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왔다.

털실이 이제 세 줄이나 꼬여버린 책장들의 통로.

<2000년대 명작 호러 단편선>이 꽂힌 한빛도서관의 코너.

그리하여 내가 책의 빈자리를 확인하러 몸을 굽히는 그 순간.

“이제 책을 도로….”

입이 막혔다.

“쉿.”

“…!”

늑대 조장이, 나를 끌고 순식간에 해당 코너의 모퉁이를 돌아 책장 뒤편에 숨었다.

…등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쓴다.

-다른 개체가 온다.

“…!”

그리고.

반대편 모퉁이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나는 망연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건….

“여기가… 털실이 제일 많네…….”

경비반장.

그리고…….

잘 했 어

골든 마스코트.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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