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8화
…이번에 A조와 괴담에 투입되면서 내가 지켜야 할 점을 알아보자.
조건
1. 쫄보인 걸 들키면 안 됨.
2. 공략법 미리 알고 있단 걸 들키면 안 됨.
3. 비협력적인 조장의 사내 괴롭힘에서 살아남아야 함.
‘차라리 죽여라.’
입사하고 나서 이 혼잣말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조져지길 바라는 상사와 같이 괴담에 들어가는 건 또 처음이니까!
‘매일 새롭게 지옥 같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쫄보인 걸 알자마자 마무리팀에 처박을 성격의 일 지상주의 상사….
한마디로, 내 생존을 방해할 사람들과만 괴담에 들어온 것이다.
‘역시 답은 악착같이 포인트를 모아서 소원권으로 여기서 탈출하는 것뿐인가.’
게다가 지금 들어온 괴담도 진땀 나도록 사람 헷갈리게 만들었다.
“공간을 보니 어때?”
“…폐공장, 같습니다.”
기름 냄새 나는 어두운 폐공장.
대체 폐공장이 등장하는 괴담이 <어둠탐사기록>에 몇 개나 되는지 아는가?? 적어도 수십 개는 넘는다.
게다가 랜덤으로 공간이 바뀌는 괴담 중에 폐공장이 있는 건 더 많겠지!
A조 둘과 떨어지는 대로 빠르게 식별코드 넣어서 <어둠탐사기록>에 검색 돌려보려고 했는데, 도통 혼자 있을 틈을 안 준다.
‘가, 감시하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잖아.’
마치 내가 실수하길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A조의 두 상사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식은땀이 난다.
‘협조해 주는 동행인이 정말 하나도 없….’
–친구?
“…!”
-오! 또 다른 장소로군요. 흠, 촬영지로 그다지 적합한 곳으론 보이지 않지만 말입니다! 이 비루먹은 당나귀 같은 불결함이라니!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퍼뜩 고개를 내렸다.
주머니에 넣어둔 키링, ‘착한 친구’에게서 말이 나오고 있었다.
브라운!
‘있었다, 협조적인 상대!’
자, 잠깐. 근데 바로 옆에 A조 상사 둘이 있는 판에 네가 그렇게 대놓고 말을 하면….
-이런, 혹시 우리의 소중한 우정이 방해받을까 걱정입니까? 문제없습니다! 친구가 아닌 자는 내 말을 들을 자격이 없으니까요!
휴우.
다른 사람한테는 말이 안 들린다는 뜻인가.
‘그러고 보니, 확실히 ‘친한 친구’ 중에 소유자와만 대화를 했다는 기록도 있었지.’
그리고 상대의 기분이나 겉생각을 기민하게 읽어낼 수 있다고 했던가.
나는 조금 안심한 채로 툭툭 주머니를 두드렸다.
-하하, 조금 간지럽군요!
눈물이 난다.
괴담 속 괴물이 내 마음의 안식처라는 이 상황이….
“조장님. 저기 문이 보입니다.”
“그러네. 솔음 씨가 한번 열어볼까.”
“…….”
“솔음 씨?”
“예.”
나는 즉각 정면의 녹슨 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비명을 삼켰다.
매뉴얼도 안 주고선 굳이 날 지정하다니, 아예 사람 괴롭히는 걸 숨길 마음이 없네!
-저런… 노루 씨, 왠지 힘들어 보이는군요. 체력의 문제입니까?
도리도리.
안 들킬 정도로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럼 불결한 환경의 문제?
도리도리.
-아하, 그렇다면 동행인들이 당신과 썩 맞지 않나 봅니다!
그건 맞다.
진짜 힘들다. 이 더러운 괴담 세계관이, 그리고 사내괴롭힘….
-친구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들?
도리도리도리도리도리.
-오, 알겠습니다. 때로는 마치 자석의 같은 극처럼 맞지 않는 상대도 있는 법이죠! 스스로 격려하며 나아갑시다, 친구!
위장이 아프기 시작했다.
‘봉제 인형이 난동 안 부리게 밸런스도 잡아야 한다니.’
이거 맞나.
나는 공포와 위통 사이에서 고통받으며 간신히 떨지 않고 철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끼이이익.
녹슨 철문이 열리며 드러나는 건… 공장의 작업구역이었다.
가동이 중지됐는지 먼지 쌓인 통조림과 박스가 가득했다. 깨진 소고기 통조림 사이로 썩은 내용물이 흐른다.
하지만 그보다 강렬한 것이 있다.
코를 찌르는 철 냄새.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시체 한 구.
“…….”
자, 잠시만.
“봤어? 저쪽에 시체가 있는데.”
“…예.”
“솔음 씨, 가서 뒤져봐요.”
“예.”
아아아아아악!!
바닥에 주저앉아서 통곡하지 않은 이유가 키링 인형의 체온이 위안을 주고 있어서라는 게 스스로 이렇게 쪽팔릴 수가 없다.
‘폐공장… 시체, 폐공장, 시체….’
나는 머릿속의 <어둠탐사기록> 위키 백과를 뒤지며, 겨우 비명을 지르지 않고 시체에게 접근했다.
시체는 정장을 입은 채 레일 위로 엎어져 있었다.
후두부에서 피를 흘리는 성인 남성이다.
내 또래에 정장을 입어서 그런지 어딘가 눈에 익었다.
‘미치겠다.’
도저히 직접 만질 수는 없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단번에 전용 장비를 불러내서 허공에 손을 띄워 시체를 이리저리 확인했다.
이게 통증만 전달되고 촉각은 전달 안 돼서 진짜, 진짜 다행이었다.
“…키 170대 후반에서 180대 초반 남성, 정장을 입고 있고, 출혈은 후두부에만 있습니다. 지름 10㎝ 이상의 무언가에게 강타당한 것 같습니다.”
“흠. 괜찮네. 이제 뒤집어 봐요.”
“예.”
김솔음은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나는 내면에서 온 힘을 다해 A조 조장을 노려보며, 구역질을 참고 간신히 휙 시체를 돌렸다.
눈을 감은 정면이 드러난다.
그건….
피를 흘리는 내 얼굴이었다.
“…….”
X발, X발!!
아 이 빌어먹을 괴담들 진짜!!
“오, 솔음 씨랑 똑같이 생겼네. 함정일까?”
“조장님, 슬슬 기본적인 매뉴얼이라도 알려주는 게….”
“아, 그래. 아무래도 그렇지?”
A조 조장이 가늠하는 듯 나를 보더니, 선심 쓰듯 천천히 입을 뗐다.
“솔음 씨, 여기는 이야기 속이야.”
“…….”
“소설이나 영화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이동해요.”
그건 이미 알고 있다.
내 시체를 본 순간 깨달았거든.
무슨 어둠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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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괴담
[내가 죽은 날]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C-406.
흥행하지 못한 스릴러·미스터리 이야기 속에 끌려 들어와 희생자가 되는 괴담.
첫 목격자는 반드시 이미 희생당한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탐사는 총 25회까지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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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신 분열 걸리기 딱 좋은 괴담이다.
‘이건… 감자, 감자다.’
나는 최대한 스스로를 세뇌하면서, 시체 모양의 뭔가로부터 시선을 떼려고….
“전용 장비 쓰지 말고 직접 확인해 봐요. 한번 구석구석 자세히 살펴보면서….”
장난해?
“안 됩니다.”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청둥오리 가면 너머 눈이 가늘어진다.
“…흠?”
아, 아차.
안 그래도 사내 괴롭힘당하는 상황에서 밉보인 상사에게 말대꾸?
‘수, 수습해야 한다!’
나는 이번에도 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이미 한 번 써봐서 검증된 레파토리를.
“더 빨리 탈출할 방법이 있습니다.”
또냐.
또 이 방향이냐…!
* * *
근무 조건이 추가되었다.
조건
1. 쫄보인 걸 들키면 안 됨.
2. 공략법 미리 알고 있단 걸 들키면 안 됨.
3. 비협력적인 조장의 사내 괴롭힘에서 살아남아야 함.
4. 타임어택해야 함. (new!)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 시체를 본 덕에 이게 무슨 괴담인지 확실히 알아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괴담의 정석 공략법은…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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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가 죽지 않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면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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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담은 공간을 탐색할수록 시간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이 공장을 몽땅 조사하고 다니면서 대체 왜 ‘내 시체’가 죽은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 과정을 하나씩 추리하며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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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 시간 내로 이야기를 바꾸지 못할 시, 희생자 확정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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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에 쫓기며 확정 킬 한 명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피 말리고 처절한 추적을 한나절은 해야 하는데….
‘음. 그 전에 위가 녹겠다.’
내 소화기관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지름길이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도와줘요, 탐사기록!
25회까지 기록됐다면 분명 창작자들이 매너리즘을 탈피하고자 이상하고 변칙적인 기록을 적어놓은 것도 있을 거다. 힌트로 삼을 만한!
나는 휙휙 머릿속에서 기록을 넘겼다.
‘보자, 참고할 만큼 독특한 경험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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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록 #21
한소은 대리 외 2인 투입.
직원들이 버려진 산장 형태의 어둠에 진입한 직후 즉시 어떤 작품인지 알아차림.
이는 흥행에 크게 실패했으나 인터넷상에서 밈이 되며 농담거리로 유명해진 모 영화였음.
멸시적 비웃음, 밈 따라하기, 폭소, 비하적 스포일러 등 반응 뒤따름.
결과 : 갑자기 공간이 무너지며 다른 작품으로 이동됨(이후 기록: 탐사기록 #22). 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증언.
어이구, 무슨 실패한 감독들의 망령 같은
건가? 멘탈이 약한 것까지 꼭 닮았네.
-연구원 곽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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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과장님, 대리님, 제게 10분만 시간을 주실 수 있습니까?”
“으음, 그래요.”
일단 상사에게 아예 나설 틈을 주지 말자.
직장 내 괴롭힘으로 무슨 방해가 들어올지 모르니까 치사하고 더러워도 내가 해야 한다…….
‘……토하고 비명 지르기 전에 빨리해야지.’
나는 전용 장비를 이용해서 끈적한 시체 후두부의 함몰 부위(으아아아악) 모양새를 빠르게 재확인했다. 그리고 시체의 발자국과 주변 혈흔도 체크했….
“손 놔두고 왜 굳이 전용 장비를 써?”
“그건 제 손으로 직접 잡으면 증거물이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현장보존을 위해선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나한테 속사포 랩에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증거물? 추리 소설처럼 말하네.”
“추리까진 아니고, 그냥 간단한 추측입니다. 그리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찾았습니다.”
“어?”
“답이요.”
즉시 주변을 뒤졌다. 물론 전용 장비를 이용해서 원격으로.
어디 보자.
그림자에 교묘히 감춰졌지만 완전히 가려지진 않아서 무심코 시선이 지나치기 쉬운 곳에….
‘찾았다.’
나는 선반 아래, 퀴퀴한 구석에서 원통형 물건을 꺼냈다.
“그건… 통조림 캔이잖아?”
“예.”
“흐음, 여기 널린 게 통조림 캔인데?”
그래. 여긴 통조림 폐공장 같으니까.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내가 들어 올린 통조림에는, 약간 구겨진 구석에 혈흔이 묻어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 클리셰대로인 것이다.
-호오, 노루 씨! 이게 추리극이라면 결정적 증거겠군요. 머리의 상처 자국과 모양새가 딱 들어맞습니다.
맞다.
“이게 후두부의 외상에 파인 홈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아, 전형적입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배경의 흔한 사물이 흉기였던 거군요! 이야기다운 구조입니다….
그래그래.
어쨌든 A조 대리도 즉각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게 흉기인가 보….”
툭.
나는 ‘흉기’ 후보 통조림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 발길질로 세차게 부쉈다.
“…??”
“…????”
-?!??!
“아.”
나는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런 강도로 인간의 후두부가 망가졌을 리가 없는데… 흠. 이상합니다. 앞뒤가 안 맞는데요.”
덜컹.
순간, 공간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통조림으로 가격당한 것처럼 보이는군요!
그러니까 말이다.
나는 막 깨달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 캔, 알루미늄입니다.”
“그게 왜?”
“보통 통조림 캔은 철로 만들거든요.”
눈살을 찌푸렸다.
“왜 음료수 캔에나 쓸 법한 알루미늄으로 통조림을…. 흠, 설마….”
-흥미진진하군….
일부러 한 템포 쉬고 말했다.
“고증 실패인가?”
우득.
그 순간, 내 주변의 통조림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무시한 채 혼잣말을 이어갔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합니다. 음료수 캔을 통조림 캔보다 비교적 자주 접하니까, 무심코 음료수 캔을 생각하고 실수로 알루미늄으로 재질을 표기하는 일….”
-호오….
하지만.
나는 말을 멈추고 헛웃음을 지었다.
“에이, 설마.”
“…솔음 씨?”
“누구든 검색만 한 번 하면 나오는 건데, 그렇게 이야기를 대충 만들진 않았겠죠. 추리 장르에서 가장 핵심인 게 바로 트릭인데, 바보도 아니고.”
-하하하!
“생각해 보면, 통조림 공장에서 통조림으로 살인이 일어나는 것도 너무 뻔한 구조이지 않습니까?”
이건 좀 진심이긴 했다.
“신선함도 반전도 없는데… 이걸 작가가 자기 나름대로는 트릭이랍시고 적었을 리가 없습니다. 감각 있는 창작자라면 말입니다.”
-오, 동의합니다!
공간이 덜덜 흔들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워낙 형편없어서….”
나는 무심한 어조로 끝맺음했다.
“요즘엔 아마추어도 이렇게는 안 적겠습니다.”
쿵.
정적 후.
퍼퍼버버버펑!!
사방에서 통조림 캔이 터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통조림 캔에 맞은 공간이 눈물을 줄줄 뽑아내듯 녹아내렸다.
그리고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모든 게 사라지기 직전,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흑흑대는 구슬픈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리는 예의 회사 15층의 고급스러운 응접실에 서 있었다.
통조림 내용물을 뒤집어쓴 채로 말이다.
“…….”
“…….”
“나왔…네.”
A조 조장이 처음으로 평정심을 잃고 더듬었다.
“어둠이 내보내줬, …왜?”
나는 터진 소고기 통조림 찌꺼기를 얼굴에서 닦아내며 묵묵히 답했다.
“멘탈이 터진 겁니다.”
* * *
내 시체가 있던 괴담에서 탈출 후.
사무실에 딸린 샤워실에서 씻으며 온몸을 덮었던 소고기 통조림 내용물을 깨끗이 제거한 뒤, 우리는 다시 응접실에 모였다.
“정말… 매뉴얼 없이 신속 클리어가 자랑이라더니, 소문 그대로구나.”
“과찬이십니다.”
“이럴 때는 겸손한 거 아니야, 솔음 씨.”
정상적으로 꿈결 수집기에 노란 용액이 차오른 것을 체크한 A조 조장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 눈에서 감탄이 보였다.
“어떻게 이 결과를 도출했지?”
예. 이 질문 하실 줄 알았습니다.
나는 뒷짐을 지며 각 잡힌 발표자의 자세를 취했다.
상사의 사내 괴롭힘이 재발동해서 트집 잡히는 것의 방어용이다.
“정석적인 추론 과정을 거쳤습니다.”
“흠.”
“일단… 제게 자꾸 시체를 관찰하고 주변을 살피게 만든 것으로 보아, 시체가 탈출의 핵심일 것은 짐작했습니다.”
물론 그냥 갈구려고 한 거겠지만 말은 붙이기 나름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게 이야기라고 하셨으니, 누군가가 시체가 되는 이야기… 즉, 살인사건에 대한 영화나 소설이겠지요. 그렇다면 제 죽음 막는 것이 정석적인 클리어 방식일 것이라 짐작했습니다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잖습니까.”
“…?!”
“기껏 불러주셨는데 되도록 오전 중에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A조 조장이 ‘이게 무슨 미친 소리니 신입아’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하지만 과장님도 쫄보보단 또라이가 낫다고 하실 거잖아요!
“그래서 지름길을 찾았습니다.”
“어떻게?”
“힌트가 있었으니까요.”
나는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두 분의 행동 말입니다.”
“…!”
“두 분은 매뉴얼을 읽으셨잖습니까. 그래서 자꾸 행동에서 단서를 주시더군요.”
시체를 관찰하게 부추긴 것처럼 말이다.
‘그게 의도적으로 준 힌트였다면, 저도 모르게 준 힌트도 있었지.’
나는 가장 결정적이었던 파트를 떠올렸다.
-그러네. 솔음 씨가 한번 열어볼까.
-솔음 씨?
“어둠에 진입했는데도 제 본명을 부르셨죠.”
“…!”
원래라면, 괴담 속에서는 서로 본명을 부르지 않고 가면에서 따온 별칭을 부르는 게 확실한 권고사항이다.
안 좋은 방향으로 이용당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A조 조장은 나를 ‘노루’가 아니라 ‘솔음’이라고 불렀다.
나보다 훨씬 베테랑에 정예팀인 사람이 그랬다면 이유는 하나다.
그래도 괜찮다는 걸 이미 알았던 거다.
“그건 이 어둠에 제 본명을 듣고 절 해칠 만한 지성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미 발생한 내 죽음 외에는 다른 초자연적인 간섭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까지 추가 설명한 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고… 그렇다면 좀 더 공격적으로, 아예 이야기 자체를 공격해 와해시키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
“그런…… 생각을 했다고?”
“예. 이야기는 토대가 무너지면 의미 없잖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개연성을 비난해 이야기를 무너트리고 빠져나왔습니다. 이상입니다.”
“…….”
“…….”
상사들의 얼굴이 어쩐지 멍하다.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우리 대화나 행동으로도 그런, 그런 걸 유추했다고…?”
“그렇습니다.”
아니다.
사실 탐사기록을 벤치마킹했어.
갑자기 공간이 무너지며 다른 작품으로 이동됨(이후 기록: 탐사기록 #22). 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증언.
겨우 밈이 된 작품을 비웃는 걸로 멘탈이 깨져서 작품이 재구성됐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예 차근차근 고증 지적을 하면서 창작자로서의 자존감을 짓밟으면 새 작품이고 뭐고 사라지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성공했네.’
얏호.
근데 A조 조장이 나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굉장히… 쉽게 말하네, 솔음 씨.”
헛.
“그, 물론 정석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편법이라고 부르실 수도 있겠죠.”
혹시 심기를 거스른 건가.
열심히 밑밥을 쳤다. 그리고 반성하듯 고개를 숙였다.
이 정도면 진짜 같겠지?
“그래도 질책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래. 제발 욕하고 끝내라.
나는 얌전히 사내괴롭힘 마크2를 기다렸다.
그런데…….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청둥오리 가면을 벗은 A조 조장이 놀라움과 흡족함으로 눈을 빛내는 게 보인다.
“규율과 오더는 지킨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진 않는다.”
예?
“아주 좋아요.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이거든.”
제가요?
“솔음 씨. 솔음 씨는 통과야.”
“무슨,”
“A조에 자리 하나가 비었지?”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건 사내 괴롭힘이 아니었다.
테스트였던 것이다.
“그 자리, 정식으로 솔음 씨가 채워봐요.”
“…!!”
맙소사.
이거 A조 스카웃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