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9화
입사 한 달 만에 정예팀으로 스카웃된 신입.
무슨 어그로 끄는 자기개발서 제목 같다.
하지만 지금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제가 A조요?
“어디 보자, 솔음 씨가 지난달에 D조로 갔지?”
“예. 일단 인사팀에 연락해서 파견 근무 형태로 처리하고 5개월 후에 정식 발령 처리하시죠.”
“그렇지. 진 대리. 그럼….”
A조 조장이 나를 보고 흡족히 웃었다.
“일단 솔음 씨는 당장 주임 승진부터 해야겠다.”
“…….”
“아마 다음 주 내로 공문 뜰 거야.”
맙소사.
“이 회사가 연공서열을 그다지 신경 안 쓰긴 해도 하한선이라는 게 있잖니. 이거 말도 안 되게 파격적인 대우다?”
당연하지!
승진까지 챙겨준다고? 그 정도로 사내 입김이 세다고?
아니, 아니지.
정확히는, 정예팀에 들어오기 위해선 일반 사원이 보통 한두 번 승진할 텀 정도의 근무를 하며 증명 과정을 거쳐야 했을 거다.
그래서 관행상 정예팀이 되려면 아무리 빨라도 최소한 주임은 달아야 한다는 뜻이겠지.
날 A조에 넣으려면 무조건 주임은 달아야 하니, 위에서도 자연스럽게 승진시켜줄 거란 계산이다.
‘심지어 원래 A조는 대리부터 있었어….’
진짜로 파격적인 대우잖아.
근데 왜?
왜 나한테 갑자기 이런 제안을…….
아.
대단히 흡족해 보이는 A조 조장의 얼굴을 보는 순간 벼락 맞듯이 깨달았다.
‘내가 오늘 정답지만 골랐구나!’
사내 괴롭힘으로 오해해서 너무 사리고 너무 무리했다!
부당한 지시에 군소리 안 하고, 위에서 정해주는 가이드 안에서 온갖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짜내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는 모습.
자아 없이 예예 하면서 창조성은 발휘해 보려고 하는 신입!
그야말로 상사가 원하는 인재상이잖아….
“솔음 씨? 그럼 퇴근해 봐. 빠르면 다음 주에 바로 공문 뜰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해 놓고요.”
“…….”
안 돼.
‘비극이다.’
나는… 나는 A조에 가면 안 되는 인간이라고!
‘여긴 절차가 너무 빡세.’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할 수 있는 여기서 일하다가는 겁쟁이 정체성을 숨길 수 없는 순간이 올 확률이 9할이었다.
‘그럼 소원권은 멀어지고 내 생존율을 바닥으로 저공 행진하는 거지.’
정말 죽는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상상에 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
“야, 잠깐만.”
진 대리가 설마설마한다는 투로 말했다.
“너… 설마 고민해?”
나는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왜? 아니, 제정신이야? 혹시 마무리팀 그 고기방패들 보고 그래? 걔네 안 데려가도….”
“진 대리, 잠깐만.”
A조 조장이 진 대리를 말리더니, 온화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입사 한 달밖에 안 되어서 갑자기 너무 좋은 제안을 받으니 고민이 많지요? 그럴 수도 있지.”
“…….”
“근데 현명한 사람은 과감히 기회를 잡는 법이라는 걸 알아야 또 사회에선 성공하는 법이야.”
기회가 아니라 함정이라 문제란 말입니다!
‘와 이거 어쩌냐.’
어떻게 하면 저 꼰대 상사의 마음을 최대한 상하지 않게 만들면서 이 판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거 잘못 거절하면 제대로 밉보일 것 같단 말이다.
걱정했던 사내괴롭힘이 진짜 시작될 수도 있었다.
‘답이 안 보이는데….’
그 순간이었다.
땡.
엘리베이터 도착 소리다.
이윽고 승강기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사람, 아니 도마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장님!’
팀장에게 불려 갔다던 이자헌 과장이 나타났다.
도마뱀의 세로 동공이 A조 조장의 시선과 맞부딪쳤다.
“…이자헌 과장.”
“백석주 과장.”
이자헌이 뚱한 시선으로 A조 조장을 보았다.
“당신에게 사과하라고 하더군요. 미안합니다.”
“…….”
A조 조장… 육두문자를 참고 있구나.
“하… 아니, 됐어. 나만 열 받지. 나만.”
“?”
“됐다고요. 어차피 지금 결원 채울 사람도 막 스카웃 했어.”
A조 조장이 손을 절레절레 젓더니, 나 어깨를 한 손으로 두드렸다.
헛.
“자 봐, 우리조 막내가 될 사원이야.”
나름대로 충격 선언이었으나….
“그렇군요.”
도마뱀이 고개를 끄덕였다.
“A조가 근무 조건이 더 좋은 건 맞습니다.”
“…….”
제가 어떻게든 탈출로를 찾아보게 아쉬운 척이라도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에라이 어쩔 수 없다.
‘혼자 해보자!’
나는 일부러 당혹스럽다는 듯이 두 조장을 번갈아 보다가, A조 조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단….’
A조 조장의 성격을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원리원칙주의자.’
직급대로 일을 정확히 나누고, 하극상을 대단히 거슬려 하며, 자기 사람을 아낀다.
입사 한 달 된 날 스카웃한 걸로 봐서는 때론 파격적인 모험수를 두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가 정한 선 안에서다.
‘누가 대드는 건 못 참는 스타일일 거야.’
즉, 수직형 대기업의 전형적인 엘리트 중간관리자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일단 머리를 박았다.
“과장님, 신입인 절 좋게 봐주시고 과분한 제안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으흠.”
“그래도… 전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신입사원이니, 사원답게 근무하며 직원으로서의 기초적 역량과 지식을 쌓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를 빤히 보던 A조 조장이 입을 열었다.
“…솔음 씨, 혹시 정예팀 기본급 임금테이블이 얼마부터 시작하는지 아나?”
모르는데요.
“팔천이야.”
“……!”
“거기에 위험수당 붙기 시작하면 연 수령이 1억 5천부터 보통 시작해.”
세상에.
“지금 솔음 씨가 클리어한 C급 괴담도 주요 기여자로 넣을 거거든. 새로운 방법으로 순식간에 클리어했잖아?”
그, 그랬죠?
“근데 심지어 다른 사람들도 써보려고 시도할 만한 방법이야.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어떤 의미인데요?
“매뉴얼이 전면 개정될 수 있단 거지.”
“…….”
“그래. 단순히 추가가 아니라 개정.”
A조 조장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매뉴얼 개정되면 포상금이 나온다?”
“…!”
“꽤 금액이 커. 그래서 위에선 개정으로 잘 처리 안 해주려는데… 정예팀은 또 여기서 예외지.”
아.
“A조에서 들어가면 훨씬 쉽고 빠르게 진행되거든. 신뢰도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
“어디 보자… C등급 매뉴얼 개정 수당.”
A조 조장은 일부러 퍼포먼스하듯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5천만 원이네?”
“……!!”
“오늘 하루 일한 걸로, 솔음 씨 추가 수당만 오천인 거야.”
5천만 원.
“계속 벌 기회, 이렇게 놓치고 싶어?”
와.
그럴 리가요.
‘근데 돈 벌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
눈물 나네 진짜. 환장하겠다.
‘되뇌자. 이 세상 돈은 나한테는 게임 머니다 다를 바 없다, 게임 머니, 게임 머니다…!’
그래!
나는 최대한 눈을 우수에 젖게 빛냈다.
그리고 개소리를 시작했다.
“당장의 돈보다 중요한 건, 제 실력과 가치를 갈고닦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친 짓이다.
‘실력과 가치를 갈고닦는 이유가 돈 더 받으려는 건데 왜 돈을 걷어차.’
하지만 내 입은 30년쯤 전 꼰대 경영자 관점에 딱 맞게 나불대고 있었다.
“선조들께서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이 생긴 이유도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A조 진 대리가 날 미친 사람 보듯이 보았다.
그러나 최고 상사의 마음에 닿긴 했나 보다.
“흠.”
A조 조장은 고민에 잠긴 듯했다.
이 상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더니,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본인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얏호!
“난 노루 씨 똑똑한 친구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 생각보다 미련하네. 어휴.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됐다.
목소리는 나무라는 식이지만 저 사람 입장에선 오히려 이건 칭찬에 가까운 말이다!
…물론 기어코 한소리 했지만.
“열심히 하는 건 좋지. 그런데 너무 순박한 것도 회사 생활에 안 좋아.”
예예.
“내가 조언 하나 하자면… 회사 생활 정으로 하는 건 아니야. 그건 조심해야 돼. 특히 말 안 통하는 인간한테 일방적으로 정 붙이는 건.”
특정 누군가를 쳐다보며 A조 조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 마요, 안 좋아.”
“…그, 예.”
도마뱀 조장이 외골수 싸패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군요. 잘 알겠습니다….
“내 말 잘 들었어요, 이자헌 과장?”
“? 예.”
도마뱀이 왜 당연한 소리 하냐는 듯 대답했다.
“잘 들었습니다.”
“…….”
“…….”
‘이 미친놈 봤냐’는 식의 눈짓 그만 주셔도 괜찮습니다, A조 조장님….
“아무튼 간에.”
A조 조장이 심호흡하며 대화를 정리했다.
“오늘은 수고했어요. 잘 들어가고.”
“…! 예!!”
해방선언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 보겠습니다.”
으아아악 드디어 탈출할 수 있다…!
나는 허겁지겁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A조 대리가 빠르게 다가와 속삭였다.
“멍청아. 너 후회할 거야.”
“…….”
“D조 과장은 아직 소원권 만져보지도 못했다고. 우리조 조장은 이미 소원권을 한번 타본 사람이란 말이야.”
괜찮아. 나 저 도마뱀이 팀장까지 가는 거 알거든.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없으니 아부나 하자.
“대리님께서도 금방 타실 것 같은데요.”
“뭐?”
“그때 대리님께 여쭤보겠습니다.”
“…….”
진 대리는 잠깐 당황해하는 것 같았으나, 곧 코웃음을 쳤다.
“뭐, 판단력이 있긴 하네.”
“대답해 주실 거죠?”
“그래.”
구두 약속이긴 했지만, 이 사람 성격이 더럽… 음, 거칠긴 해도, 거짓말을 하거나 말 바꿀 타입으로는 안 보였다.
“과장님, 대리님.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래. 잘 들어가.”
나는 거듭 인사를 한 후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더 붙잡히기 전에 얼른 탔다.
그러자 도마뱀이 어느새 나를 따라 냉큼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정말로 그 영혼 없는 사과 한마디 딱 뱉으러 온 거였냐….
-내려갑니다….
우리 둘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적막 속에서 내려갈 때.
예상치 못하게도, 도마뱀 과장이 말을 걸어왔다.
“김솔음 씨.”
“예?”
“D조에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허.
“……설마, A조에 갈 수 있는데도 굳이 D조에 남은 건, 따로 바라는 게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추측하의 질문…이십니까?”
“예.”
어휴.
나는 뒷머리를 몇 번 헤집은 후,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그런 거 없습니다, 조장님.”
“?”
“이득 때문에 남기로 결정한 건 아니라고요.”
살려고 남은 거라고!
도마뱀이 의아한 듯 세로 동공을 좁혔다.
“정예팀이 아닌 일반팀에 계속 남아 있으면 포인트상 손해입니다. 소원권을 수령하는 속도에 차이가 날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제가 소원권이 필요한 건 맞더라도, 그 소원권을 탈 때까지 사는 것도 제 인생이니까요.”
“…….”
“그동안 제 마음이 더 즐겁게 근무할 수 있는 곳에 있고 싶었습니다.”
매 순간 쫄보인 걸 언제 들킬까 공포에 질려서 근무하고 싶진 않다, 야…….
“…그렇군요.”
도마뱀은 입을 다물었다.
이제 좀 조용히 내려갈…….
“김솔음 씨,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오늘 따라 말 많네.
“…소원권을 수리하면 뭘 빌고 싶은지 물어보시는 겁니까?”
“예.”
“그럼 먼저 조장님의 소원부터 듣고 싶습니다만.”
뭘 일방적으로 캐묻냐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도마뱀은 세로 눈을 멀뚱히 뜨며 허공을 보았다.
마치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제 소원이 아닙니다.”
“예?”
“저는 타의에 의하여 근무 중입니다.”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돌아보았다.
인간이 아닌 도마뱀의 머리에서 비늘이 번뜩이고 있었다….
“…누구의 의지인지, 여쭤봐도 됩니까?”
“안 됩니다.”
아, 예.
별로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원래 그런 도마뱀인 것을 아니까.
‘사정이 있구먼.’
그나저나, 저쪽이 대답은 해줬으니 나도 말은 해야 하는 건가.
나는 갈등하다가 말을 골랐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사실, 이자헌 과장은 이 답변에 엄청난 파생 질문을 할 수도 있었다.
어떤 집이냐, 왜 집에 돌아가는 것이 소원이냐, 혹시 집이 망했냐, 누가 돌아가셨냐, 혹시 관념적 의미의 집이냐… 등.
그리고 이자헌은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끝이었다.
조용한 중에, 평화롭게 엘리베이터가 내려간다.
“…….”
이제 인정한다.
도마뱀 조장은 어떤 의미에선 꽤 편한 대화 상대였다.
의외로 말이다.
* * *
사택으로 돌아왔다.
[연쇄살인마 조심해]
오늘도 백사헌에게 친절한 재난 알림 문자를 보내준 후, 나는 자리에 누웠다.
‘또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정말 이러다가 수명이 반토막 날 것 같다. 심장이 남아나질 않네.
그래도 오늘 톡톡한 수확이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다.
추가 포인트, 정예팀 상사들과 인맥.
그리고 수당까지.
“…오천만 원인가.”
언제쯤 입금되려나.
게임 머니니 뭐니 했지만, 냉정히 생각하자면 게임 머니라서 더 쓸 곳이 많기도 한 법이었다.
내 능력치를 강화하려면 필요하니까.
‘현금이 좀 더 있었으면 싶은 건 사실이야.’
슬슬 외계인 상점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다.
자꾸 돌발 사태가 발생하니까 마음이 급하기도 했다.
방어구, 특히 정신 방어 관련 장비나 아이템은 꼭 가지고 싶다.
‘외계인 상점에서 VIP가 되면 나오는 특수 아이템들도 있었는데….’
그래도 오늘 내가 번 돈을 생각하니 일단 입이 다물어졌다.
오천만 원.
“…허.”
직장인 통장에 합법적으로 회사에서 꽂히는 추가 수당이 이 돈이라니.
금전 감각이 마비되는 느낌이다.
그래도 아이템을 충분히 구하기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더.
“어디 돈 나올 구석 더 없….”
드르륵!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새로운 팝업을 띄웠다.
‘설마 백사헌?’
아니었다.
놀랍게도, 새로운 오픈채팅방에 누군가 날 초대한 것이다.
“…?!”
[K.LEE]
프로필을 쾌청한 하와이 바닷가로 설정한 영문 이름이었다.
이게 무슨 수상쩍은 상황….
[K.LEE: 오 안녕하세요 사원님ㅋㅋㅋ]
[K.LEE: 돈 좀 많이 필요하세요?]
“…??”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