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54화
약속된 사흘.
‘지평선 산장’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
공무원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일이 어느 시점에서부터 뒤틀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일 자체가 썩 달갑지도 않았다면, 누구라도 기분이 그리 좋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근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그는 준비된 작업복을 입고, 장비를 차고, 도구를 들고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별로 달갑지 않은 꼴을 보게 되었다.
“……후.”
1층 거실은 피범벅이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공양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피로 오망성을 그려놓고 각 부분에 토막 난 신체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깨끗한 소파에는 정신을 잃은 여성이 쓰러져 있었다.
부부 중 아내였다.
“…….”
공무원은 잠깐 갈등했으나, 결국 정해진 대로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의적 판단이 주는 위험함을 알기에.
그리고….
“으윽…… 어, 어어?!”
그다지 살 가치가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아아악!”
퍼뜩 소파에서 정신을 차린 여성이 비명을 질렀다.
눈앞에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방수 소재의 검은 우비를 걸치고 있었고, 그 손에는 35㎝는 족히 넘을 부처나이프를 들고 있었으니까!!
그 도살용 나이프를 든 사람은 한숨을 참았다.
‘하필.’
지금 정신을 차렸나.
피곤했다.
평소보다도 더.
아니, 대체 무슨 상황이 이렇게까지 계획대로 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공무원은 반사적으로 산장에서 보낸 첫날부터 떠올렸다.
그가 맨 처음 타겟으로 삼은 건 부부 중 하나였다.
물욕이 커서 쉬운 타겟이기도 했고, 가장 커플 중 하나가 죽으면 공포감을 조성하여 이후 일이 편하다는 관리국의 분석이었다.
그는 침투된 머릿속 충동이 속삭이는 방식대로, 그를 부엌으로 유인해 액자 속 복선을 실현시킬 생각이었다…….
‘아궁이에서 태워야겠어.’
근데 누가 선점해 놨다.
‘…!?’
아궁이에 이미 시체가 이미 들어 있던 것이다.
심지어 상당히 전위적인 모양새로.
…??
머릿속에 물음표만 떠다녔다.
분명 재난관리국에서는 그간의 노하우를 이용하여, 자신이 연쇄살인마 역할로 선정되도록 미리 해당 카세트테이프를 입수해 배정했다.
근데 왜 갑자기 또 살인마가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초자연적 재난의 불규칙성이 다시 발발한 게 아닌가 했다.
그날 점심에 뒤뜰에서 분쇄육이 된 대학생 2인의 옷가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
그는 준비해 왔던 대형 해머를 도로 옷장에 고이 걸어둘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쯤 되니 알 수밖에 없었다.
어떤 미친 자식이 다 알고 선수 쳐서 죽이고 있는 것이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랍시고 아주 토막 살인까지 먼저 해줬으니, 두통이 안 생길 수가 없다.
대체 무슨 정신 나간 상황인가.
하지만 할 일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환장할 판에도 그는 우선순위대로 마지막 일을 수행해야 한다.
그게 재난관리국다운 판단이었다.
“히익….”
짧은 회상은 그렇게 끝났다.
공무원은 반항도 못 하는 눈 아래 사냥감을 보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짙은 피로감을 느끼며, 그가 칼을 예리하게 휘두르려던 순간.
“007 요원님.”
“…….”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2층 난간에서 기대어서 거실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보였다.
회사원.
연어 마켓에서 구한 판매자.
“안 죽여도 괜찮습니다.”
김솔음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해당 인원은 자신이 전설적인 살인마의 영감과 유산을 이어받은 존재라고 굳게 믿게 되며, 정신적·육체적 변이를 경험한다.
정말로 공무원은 검은 우비부터 날이 번뜩이는 부처나이프까지 누가 봐도 본격적인 살인자의 차림새를 하고 있다.
누가 봐도 이 재난이 점지한 연쇄살인마인 것이다.
그러나 김솔음은 알았다.
‘모습이 저래도 말은 통할 거야.’
-확신합니까, 친구?
확신한다.
‘재난관리국 요원들은 재난에 맞춰서 대비책을 준비해오거든.’
가령 지금 저 공무원의 가슴 부근에서 우비 사이로 살짝 보이는 홀스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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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초자연재난관리국
/ 아이템
줄잡이
검은 홀스터 모양의 장비형 아이템.
착용 시 고형(刳形)급 이하의 초자연적 정신이상에 반항력을 얻는다.
아이템 사용 조건 : 초자연재난관리국 소속 8급 이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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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정신 방어 장비였다.
공무원들이 다 바보도 아니고 정신 세뇌로 살인마로 재탄생할 수 있는 괴담에 보내면서 맨몸 투입시키겠는가.
‘절대 맨정신으로 보낼 리 없지.’
안 그래도 사망 사고가 전제되는, 위험한 괴담 위주로 투입되는 공무원들이었다.
‘스마일 스티커 같은 호감작 아이템 쓰는 간악한 제약회사 직원이라도 만나면 큰일이잖아.’
그러니까 말이다.
김솔음은 무표정으로 서 있는 공무원에게 말했다.
“정말 죽이실 필요 없어요. 이미 복선은 다 실현됐잖아요.”
“…….”
“제가 다 했거든요.”
침묵.
“당신이 죽였습니까?”
음.
확실히 이 재난은 연쇄살인이 일어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어둠탐사기록>에 따르면, 인위적으로 개입해서 끝까지 살인이 안 일어나면 대충 유산 상속 파트에서 서로 죽이고 파국으로 끝나더라.
‘그러니까 공무원에게 직접 죽이라고 판을 짜놓은 거겠지.’
실수로 공무원이 죽으면 안 되니까, 차라리 연쇄살인마가 되게 지정해 놓고 관리하는 것이다.
그게 법칙이었다.
연쇄살인을 하거나.
“아니오.”
“…!”
“죽였다고 생각하게 만든 거죠.”
연쇄살인과 다름없다고 판정하게 만들거나!
“시체가 있었잖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회사원, 김솔음이 목 뒤를 매만졌다.
“근데 제가 만든 시체는 아니거든요.”
“…!”
“그거 아세요? 이 산장엔 지하가 있습니다.”
김솔음은 떠올렸다.
순금 액자 안에 있던 시구의 일부를.
거기엔 살해 방식 복선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다른 복선도 있었지.
깡총깡총 웃으며 뛰는 소리
발아래 나무 바닥 콩콩
식탁이 풍성해
콧노래 들려
이 문단은 힌트였다.
발아래 나무 바닥 콩콩
바닥 아래에 빈 공간이 있어서 소리가 울린다는 뜻.
그리고….
‘저 시구는 살인을 음식에 비유했으니…….’
식탁이 풍성해
무언가, 연쇄살인과 관련된 것이 풍성하다는 것.
아니나 다를까.
“지하에 방부 처리된 신체 토막이랑 장기가 진열되어있던데요.”
“…!”
작업장이 있었다.
“말씀대로 이 산장에선 이전에도 연쇄살인이 일어났었나 보더라고요.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진짜로.
아마 이전 차수에 일어난 연쇄살인에서 파생된 부속품들 같은 것 아닐까.
어쨌든 야밤에 ‘귀신 안 나온다’라고 되뇌면서 각오하고 지하실로 갔더니 그 꼴을 본 김솔음의 마음은…… 음, 넘어가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가 그 미친 소품들의 새로운 활용 방법을 창안했다는 점이다.
공무원은 눈치챘다.
“…지금까지 나온 시체들.”
“네.”
김솔음은 멋쩍게 말했다.
“온전한 몰골인 게 별로 없었죠?”
지하실에 있던 토막들을 재활용해서 마치 지금 죽은 것처럼 꾸며놓은 것이니까!
그래서 백사헌이 가장 먼저 희생자가 될 필요가 있었다.
‘……어시 없으면 못 했다.’
방부처리고 나발이고 토막 난 시체를 야밤에 혼자 맨손으로 주물럭대며 살해 현장을 재현한다?
상상만 해도 세상을 손절하고 싶어졌으니까….
어쨌든 백사헌은 쌍욕을 퍼붓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이래야 멀쩡히 살아나갈 수 있다. 아님 그냥 죽을래?’라는 궁극의 양자택일 선택지에 굴복했다.
얌전히 좋은 살인 트릭 조수가 되어주었단 뜻이다.
둘은 열심히 살해 현장을 조작했다.
부엌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터트리듯 태운 뒤 발을 꽂아 백사헌의 운동화를 신겨놓았다.
뒤뜰의 분쇄된 뼈와 고기는 창고 뒤편 냉동고에 있던 식재료들을 재활용한 것이었으며, 옷가지만 벗겨서 적절히 뿌려놓았다.
지금 이 신체 토막이 널린 거실 꼴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습격해 희생자를 납치하는 건 김솔음이 전부 직접 혼자 했지만 말이다.
‘브라운의 능력이 있어야 습격이 수월하니까 어쩔 수 없었지.’
어쨌든, 김솔음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마무리했다.
“사람들을 몰래 숨겨놓고서는 죽인 척 현장을 꾸민 거죠. 진짜 시체로 해놔서 그런지 의심을 받진 않았습니다.”
“…….”
“그럼 살인마가 당황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말이다.
“근데… 그래도 누군가 사람을 죽이더군요.”
“…….”
“알레르기랑 산사태 말입니다.”
둘 다 김솔음이 손 쓰기 전에 죽었다.
산사태야 이 초자연 현상에 휘말려 죽은 거라고 쳐도, 알레르기는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상대에게 어떤 치명적인 알레르기가 있는지 관찰만으로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셜록 홈즈 외에는 없을 것이다.
‘사실 나도 우연히 대화하긴 전엔 몰랐지.’
그러니까 그는 살인을 위해 알레르기 물질, 땅콩을 미리 산장에 챙겨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미리 여기 들어올 사람들의 프로필을 알고, 살인을 준비해 온 사람의 짓이란 뜻.
“알레르기 쇼크, 요원님이 일으킨 건가요?”
“…….”
공무원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솔음은….
‘음, 역시.’
전혀 충격받지 않았다!
선량한 민간인이 죽고 희생당하는데, 조금은 애도를 표할 수도 있지 않냐고?
실은 ‘선량한 민간인’이 아니라서 말이다.
‘정부가 러시안룰렛으로 희생자를 뽑지는 않거든.’
초자연재난관리국의 민간인 징발자는 ‘악의 저울’을 통해 선정된다.
저울의 추는 ‘무동기 살인’으로 걸며, 그보다 무거울 시 징발 대상자로 분류.
즉, 묻지마 살인보다도 죄질이 나쁜 미친 짓을 저질렀다고 판명된 사람만 정부가 뽑아서 이 괴담에 넣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이 재난을 주기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면, 죽어도 싼 인간들을 모아서 넣는 거지.’
최소한의 윤리성을 지키려는 판단. 공식 조직다웠다.
‘이번에도 뭐… 정부 기준으로 다 죽어도 싼 인물들인 건가.’
그리고 김솔음의 추측은 정확했다.
사실 부부로 보이던 남녀는 불륜 관계로, 기혼자 쪽의 본래 아내와 어린 아들은 충격과 생활고로 일가족 동반 자살했다.
집단 괴롭힘으로 동급생을 죽인 사건의 가해자로 기소됐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후, 나란히 대학에 진학해 등산 동아리에 가입한 대학생들.
대리 기사를 하던, 아직 잡히지 않은 소아성범죄자까지.
이렇게 구체적인 사실까진 알지 못하더라도 대강 짐작한 김솔음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마 환상의 라인업이겠지.’
분명히 정부에서 손을 써서 그쪽에 테이프가 들어가도록 한 걸 터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관리, 감독할 공무원을 하나 투입시키는 거야.’
지금 김솔음에게 대답하고 있는 저 사람을 말이다.
공무원은 동요 없이 입을 열었다.
“모두 범죄자들입니다.”
“…….”
“이 산장의 모든 사람은 형법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타국에선 사형을 선고받기도 할 만큼 죄질이 나쁜 악인들입니다.”
테이프를 소지하지 않은 당신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공무원은 내심, 이 말이 얼마나 통할지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직무 수행 중에 만난 민간인들과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는 더더욱.
그는 짙은 피로감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음… 그랬군요. 어쩐지. 대충 짐작은 했습니다.”
“…!”
놀랍게도 2층의 회사원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 두 분 외에 나머지 분들은 잘살아계시기도 하고요.”
김솔음은 약간 머쓱한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뭐, 아무리 악인이라도 직접 죽이는 사람의 심적 부담이 있을 테니, 나쁜 결과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
공무원은 결국 물어보았다.
“그쪽은 누구십니까.”
살인이 일어날까 걱정해서 먼저 살인 현장을 꾸미고, 심지어 누가 봐도 수상한 차림새의 자신을 이성적 사고를 통해 신뢰한다?
이건 평범한 사람의 정신력이 아니었다.
“음.”
눈앞의 사내가 긴 한숨을 쉬었다.
“그냥… 부득이하게 이런 사태에 잘 휘말리는 사람이죠.”
“혹시 재난관리국 관계자입니까?”
“그럴 리가요. 소문은 들어보긴 했지만요. 이렇게 요원님을 직접 봬서 신기… 아,”
회사원이 고개를 돌렸다.
끼익.
부엌 뒷문이 열리고 있었다.
마치 첫날처럼.
“산장지기분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재난의 엔딩씬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