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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5화


신입이 수습 기간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면 어떻게 할까?

보통은 가벼운 축하 행사와 함께 선물 증정을 한다.

괴담 속 대기업도 그럴 줄은 몰랐지만.

[어디 보자… 세상에! 이번 수료자가 22인이나 됩니다 여러분! 와, 인사팀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한데요?]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그리고 아마 옆에 앉은 신입사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정말로 대단한 기록입니다. 이게 난이도 조절 실패가 아니라면 여러분은 엘리트 기수예요. 엘리트.]

강연장에 침묵이 깔렸다.

사회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명랑하게 외쳤다.

[그럼 우리 엘리트 사원 중에 최고 엘리트를 꼽아볼까요?]

[이번 현장탐사팀 신입 기수의 수석! 최단 시간에 평가를 완료하고 탈출한 사람 중 하나이며, 종합평가에서 최고점을 기록했습니다.]

사회자는 손을 들었다.

[축하합니다. 김솔음 씨!]

저요?

[김솔음 씨?]

[선물 전달이 안 되면 이 행사가 끝나질 않습니다~ 받아가세요!]

실화인가?

‘왜….’

어쨌든 자리에서는 일어났다.

안내방송을 듣지 않으면 죽는 괴담 속에 갇혀 있었는데, 저 지시 사항을 듣고 가만히 앉아 있다면 바보일 것이다.

[아, 바로 올라오는 게 참 든든합니다. 상황 파악이 빠른 게 우리 부서에서도 아주 일 잘할 것 같아서, 아쉬워요. 아쉬워.]

타 부서 상사였나 보다. 왠지 더 얄밉고 꼴같잖아 보인다.

강당 위에 올라 사회자 앞에 섰다.

[자, 선물 받아가시고!]

사회자가 내미는 것은 각진 종이백이었다.

<백일몽주식회사>의 로고가 박힌 은색 쇼핑백 안에는, 임명장으로 보이는 상패와 물건이 슬쩍 보였다가 사라졌다.

[수석인데 뭐 특별히 다른 선물 안 줬다고 너무 아쉬워하진 말고요.]

하나도 기쁘지 않다.

나는 쇼핑백을 받아 들고, 사회자를 노려보지 않기 위해 목을 까닥거리고 내려가려고….

“안에 잘 살펴봐라.”

뭐?

“무슨….”

[자, 다음 신입사원 호명하겠습니다!]

사회자는 어느새 마이크를 잡고 다음 사람을 호명하고 있었다.

마치 아무 사담도 한 적 없는 듯이.

“…….”

흠.

나는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후 고영은 씨를 비롯해 같은 칸에 있던 사람들도 올라가 선물을 받아 갔다.

큰 의미는 없지만, 백사헌은 내 다음으로 불렸고.

“…….”

“…….”

여전히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으나 대화 한마디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눈도 안 마주쳤다. 왼쪽 눈을 누르고 있는 걸 봐서는 ‘분실물’을 반납한 건 분명해 보였지만.

‘알아서 병원 가겠지.’

[다음 호명합니다. 김지원 씨!]

뒤에 불릴수록 어딘가 차림새가 이상하거나, 걸음걸이나 눈빛이 이상해진 사람들이 나와서 선물을 받아 갔다.

‘…괴담 속에 오래 있었던 건가.’

강연장에서 정신을 차린 것은 일견 동시에 이루어진 것 같았지만, 괴담 속에서는 분명 탈출 시간에 차이가 있었다.

그럼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지, 짐작하면 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탈출은 했다는 점에서는 다른 78명보다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선물은 다 잘 받으셨죠, 여러분?]

이윽고 증정식이 끝났다.

대답은 없었으나, 묘한 긴장과 기대감 같은 것이 강연장에 은은히 깔렸다.

이제 내보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약간은 기다렸다. 슬슬 끝나지 않았나 하고.

하지만.

[그런데… 이 회사가 모든 수료자를 다 채용하는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

[아니 운으로 통과한 사람들이 꼭 나오더라고요.]

설마.

[그러나 백일몽 주식회사는 언제나 공정이라는 큰 사회적 가치를 잊지 않는 기업입니다.]

[이런 수습사원은 절대평가에서 큰 감점을 받습니다.]

사회자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상투적인 손가락 튕기기, 시선으로 응시하기. 하다못해 강연장에 불이 꺼지는 등의 퍼포먼스도 없었다.

그러나….

[말했듯이, 무임승차는 다 적발합니다.]

사람이 녹기 시작했다.

“……!”

사방에서 몇몇 사람들이 인영이 뭉개지듯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비명도 움직임도 없었다.

‘X발!’

앞사람이 비명을 참으려고 입을 틀어막았다.

나도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눈은 보았다.

‘없어.’

같은 칸에 있던 사람 중 절반이 사라졌다.

나, 고영은, 백사헌, 그리고 백사헌에게 공격받았던 신입사원만을 남기고 모두.

“…….”

[남은 13명의 신입사원분들.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훌륭한 성적으로 정규직이 되셨습니다!]

기뻐서 박수 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싸늘한 정적 속에서 한 사람이 패닉에 빠져 더듬거렸을 뿐이다.

“퇴사, 퇴사하겠습니다…. 퇴사할게요.”

하지만 사회자는 여유로웠다.

[어? 이렇게 좋은 일자리를 두고? 에이, 일단 복지라도 한번 들어보고 결정하세요.]

내 뒤에서 고영은이 토하듯이 외쳤다.

“그럼 복지 듣고 나면 퇴사 처리가 가능한 건가요? 불이익 없이?”

[그렇습니다. 모두 털끝 하나 안 다치시고 퇴사할 수 있지요~]

사회자의 말은 매끄러웠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래서 깨달았다.

‘왔다.’

채찍은 모두 지나갔다.

이제 당근이 온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복지’가.

[자, 우리 회사의 대표 복지를 소개합니다!]

입사하자마자 이 미친 상황을 겪고도 현장탐사팀에서 직원들이 계속 근무하는 이유.

[임직원 복지]

소원권

무언가, 강연장의 대형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유선형의 크리스탈 병.

뚝.

병 안엔 오색빛깔로 찰랑이는 기묘한 액체가 파문을 그리고 있었다.

물결친다.

모든 색과 질감이, 물결이 만드는 파문까지 이상한 위화감이 들 만큼 아름답고 기묘했다.

정적이 흘렀다.

[좀 더 자세히 볼까요?]

사회자가 버튼을 누르자 빔프로젝터의 스크린이 올라갔다. 그리고 뒤에 감추어져 있던 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탁자 위에, 화면에서 봤던 오색찬란한 병이 실제로 있었다.

“…!”

병 속 액체는 저절로 흔들리며 강연실을 다 비출 정도로 아름다운 빛을 산란한다.

이게 현실에 존재하는 물건이 맞는지 의심하게 되는, 이상한 저것은…….

[우리 회사가 아주 실적 좋은 제약회사로 유명한 건 다들 아시고 입사하셨죠? 얼마나 기술이 좋으면 탈모약까지 만들었겠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주종목인 약이 따로 있는데… 바로 이겁니다.]

사회자가 떨리는 손을 다잡더니, 하얀 장갑을 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탁자에 놓인 크리스탈 병을 잡아서 직원들이 더 잘 보이도록 내밀었다.

[약의 이름은 ‘소원권’.]

[효능은… 말 그대로입니다. 이 약을 마시면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집니다.]

“……!”

[안 믿긴다고요? 하지만 실제로 이 약을 복용하고 소원을 이룬 여러분의 선배, 상사들이 한 트럭이거든요.]

[일단 시범을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사회자는 진열되어 있던 약의 포장을 뜯더니… 단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오늘이 제 소원권 수령일이었거든요. 하하!]

그리고 강연장의 사람은 사회자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바로 직감하게 된다.

소원권을 마신 그 순간.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던 사회자의 얼굴은 급속히 팽팽해지고 발그레한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몸이 탄탄해지고, 머리카락에도 윤기와 숱이 돌아온다.

그래, 돌아왔다.

어린 시절, 가장 힘이 넘치고 생장하는 시기의 그 모습으로!

[야호!]

고등학생 같은 외양이 된 사회자가 흥분에 차서 주먹을 치켜올렸다.

[어떻습니까? 흠흠, 쉽게 말하자면 회춘!]

목소리마저도 젊고 어려졌다.

전과 다른 의미로 강연장에 충격으로 정적이 흘렀다.

이건… 동요의 정적이다.

사회자가 강연장의 신입사원들을 가리켰다.

[여러분의 소속, 현장탐사팀은 언제나 인사고과를 잘 받습니다. 평균적으로 타팀보다 절반 이하로 짧은 근속 기간에 저 소원권을 가져가곤 했습니다….]

[소원권 수령 최단기간 10명이 전부 현장탐사팀 소속이라니까요!]

꿀꺽.

어딘가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다 말장난이다.

사실은 그냥 위험수당이나 다름없다.

‘최단기간 10명 이전에 수십, 수백 명이 순직 당했겠지.’

그러니까 미끼,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타간 사람은 분명히 있다.’

사기는 아니었다.

[그럼 질문 받겠… 오, 사원님!]

신입사원 중 누군가 조용히 손을 들고,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까.”

장신의 갈색머리 남성이다.

[아.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맨날 듣는 소리 있지요? ‘원론적으로 불가능한 단 하나의 소원이다’….]

[…라고 할 줄 알았겠지만!]

사회자가 손을 확 치켜들었다.

[소원권은 무조건 복용자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

[물론, 정확한 방식을 쓰기만 한다면요. 자세한 사용법은 임직원몰을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

질문자는 다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동요는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더 거세게 번지기 시작했다.

사회자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럼 기타 복지들은 스크린에 뜬 것과 선물 봉투에 동봉된 안내문을 확인해 주시고… 이쯤에서 결정할까요?]

휙.

짧은소리와 함께 강연장의 뒷문이 확 열렸다.

[입사 포기를 원하시는 분은 나가셔서 데스크에서 서류를 받아가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왕 붙은 회사, 잘 다녀보겠다, 하는 분은….]

사회자가 손짓했다.

[선물 봉투 안에 든 가면을 쓰시면 됩니다.]

가면? 아.

‘그게 이 시점에서 배부되는 거였지.’

[요새 말로 커스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개성을 딱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니까요, 그게.]

[뭐… 지금 건 특별한 기능은 없고. 그게 전부긴 하지만요.]

나는 스마트폰을 쥐었다.

시선이 많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메모리얼 그립톡’에 의해 재구성된 <어둠탐사기록>의 페이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 분명 이렇게 떴을 것이다.

———————=

어둠탐사기록 / 백일몽 주식회사

/ 부서

여담

현장탐사팀 소속 직원들은 외근 중에는 가면을 착용하며, 이 가면은 입사 오리엔테이션 이후 지급된다고 한다.

직원 D에 따르면 입사 연도에 따라 탈의 테마가 결정된다고.

가령, 개미탈을 쓴 요원과 사마귀탈을 쓴 요원은 같은 연도에 입사한 동기일 확률이 높다.

———————=

한마디로 ‘백일몽 주식회사’ 현장탐사팀의 상징 같은 것이다.

‘내가 이걸 받는 날이 오다니.’

여러 의미로 기분이 오묘했다.

물론 당장 여기서 뛰쳐나가서 가면을 던지며 입사 포기하겠다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9할이었다.

제발 좀 살려줘라.

‘근데… 퇴사해도 이 세계관 자체가 시궁창이지.’

여기저기에 이미 저놈의 ‘어둠 괴현상’은 산재해 있다.

아주 쉽게 괴담 속 엑스트라가 되어 인생 끝나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

그러니까 차라리 지급품과 월급, 최종 보상까지 있는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부서 이동을 노리는 편이… 더 생존률이 높을지도.

‘게다가 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려면 저 ‘소원권’이 그나마 제일 유력해 보이는 방법인데.’

어차피 이 세계관에서 나 같은 쫄보가 살아남긴 글렀다. 아예 세상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는 게 맞다고.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최대한 이성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답안을 고르자면….

‘입사해야 한다.’

미치겠지만 다른 수가 없다. 젠장.

결국 나는 눈물을 삼키고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손을 넣어 가면을 꺼내려고 했는데.

“……?”

가면과 함께 뭔가가 딸려 나왔다.

───

필요할 시

010-0153-24865

───

명함?

이름과 직위가 있어야 할 곳을 화이트로 지우고 문구를 휘갈겨 넣은 듯했다.

‘…사회자가 넣은 건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가면에 붙은 명함 따위를 가지고 있진 않은 것 같았다.

‘일단 나중에.’

나는 명함을 떼어서 봉투에 집어넣고 가면만을 꺼냈다.

맨들한 촉감에 코 위만 가릴 법한 기본적인 형태의 가면이다.

놀라운 점은 이미 주변에서 각기 마스크를 착용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 꼴을 겪고도, 도망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건가.’

변수가 있다면 단 하나뿐이긴 했다.

소원권.

‘애초에 소원권에 목숨 걸 것 같은 사람만 추려놓았나.’

나는 누구 하나 퇴사하겠다는 말없이 묵묵히 가면을 받아쓰는 강연장을 돌아보며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나도 저기 동참할 거였으니까.

‘별수 없지.’

내 탈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정말로 탈의 모양이 변한다.

좀 더 늘어나며 울퉁불퉁해지는 느낌이 볼과 이마에서 느껴진다….

“…….”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뿔이 솟아 있는, 나뭇결처럼 괴상한 패턴이 드러난 형형한 가면이었다.

잠깐, 나무 모양 뿔?

‘…녹용? 사슴?’

사슴이라기엔 괴상하게 생겼는데.

나는 떨떠름하게 가면을 쓴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양처럼 생긴 탈을 쓴 고영은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 외에도 코끼리부터 염소까지 다양한 가면을 쓴 정장 차림의 신입사원들이 자리에 앉은 모습은 아주 기묘하고 섬뜩했다.

괴담을 관리하는 회사 직원답게 말이다.

[다시 한번 입사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PPT가 넘어가며 녹음된 박수 소리를 냈다.

[입사 확정]

‘결국 이렇게 됐군….’

가면이고 나발이고, 앞으로 일을 생각하자 머리가 아득해 올 그 순간이었다.

불쑥, 메모장이 허공에 다시 등장했다.

“…!”

내게 ‘메모리얼 그립톡’ 굿즈를 뱉어냈던… 그 메모장이.

[어둠탐사기록 리얼굿즈 박스]

-새로운 굿즈의 사용 권한 해금! (!)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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