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4화
한 명이 괴담에서 탈출했다.
단, 눈이 뽑힌 채로.
“휴….”
“소리 들었어?”
하지만 지난 몇 번과 달리, 승객들은 진절머리를 내고 무서워하면서도 안타까워하진 않았다.
‘이게 설득 없는 폭력의 말로인가.’
백사헌에게 공격당한 사람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열차 안은 잠시 소란스러웠으나.
[이번 역은 증오, 증오역입니다.]
“증오 같은 소리하네….”
“하아.”
안내방송에 더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왼쪽 눈을 부여잡은 신입사원을 봐주던 고영은이 일어났다. 얼굴이 좀 어두웠다.
“저분 각막 손상이 거의 확실한 것 같은데, 걱정이네요…….”
“혹시 의료인이셨습니까?”
“아뇨. 대학만 그쪽으로… 어차피 다니다 전과해서 국시도 못 본 야매예요.”
고영은이 한숨을 쉬며 바닥에 양반다리로 주저앉았다.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
열차 문이 열렸으나 사람들은 힐끔거리며 시선만 던지고 움직이진 않았다.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밖을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혹시 내가 여기서 나가자고 하나 살피는 것 같았다.
‘의식해 주는 건 다행이지.’
백사헌 때문에 서로 더 의심하게 될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공동의 적이 생기니 사람들이 침착해졌다.
사태가 워낙 미쳐 돌아가다 보니 이전에 좀 자신 있게 발언했던 사람의 다음 말을 기대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러니까… 나 말이다.
이러다 역 결정권도 위임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저기, 좀… 부담스러우시죠.”
“……?”
고영은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들이 자꾸 의지하려고 하는 거요.”
고마운데…?
“다들 무섭고 불안해서 그러는 거니까, 너무 염치없다고 환멸 느끼진 않으셨으면… 하. 아니, 죄송합니다.”
나야말로 무섭고 불안해서 사람들 선동하려고 하고 있는데…?
“저도 나름 뭘 좀 생각해 보려고 하긴 했는데….”
어, 아무튼 의견은 환영이다.
“어떤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음, 아까 말씀하신 그, ‘최종 목적지’ 관련해서 고민해 봤거든요.”
고영은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사람의 최종 목적지라면… 역시 죽음일까요?”
“…!”
“그렇잖아요. 인간 삶의 끝이라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그쪽으로 연상돼서. 그런 비슷한 단어가 나오면 내려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오.
“근데 그러면 그냥… 편안하게 죽는 건가? 싶기도 해서…… 그래서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아니요. 확실히 설득력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가요?”
“예. 다만….”
나는 말을 흐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슬쩍 웃었다.
“…?”
전광판에 뜬 다음 역의 이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목적지란 무엇일까요.”
“네, 네?”
“사전을 찾아보면 목적이란 실현하려고 하는 일이나 나아가는 방향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열차는 테마 자체가 직관적이다.
자리에 앉아라, 분실물을 찾아라.
지시가 꼬아서 주어지지 않고, 말 그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안전하다는 거다.
심지어 오답 역에서 내린 사람도 아주 직관적인 방식으로 죽었다.
그러니까, ‘최종 목적지’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거다.
“이 열차가 말하는 목적지라는 건, 결국 지금의 내가 실현하거나 도달하지 못한 지점이란 뜻 아닐까 합니다.”
이걸 고려하면 결국 역을 고르는 기준은 아주 간단해진다.
-나에게 없는 것.
이러면 탈출 사례들도 다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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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빨강, 노랑, 파랑 등 색으로 표기된 역명.
: 탈출 성공 2인 (파랑역)
2. 왼팔, 각막, 심장 등 신체 부위로 표기된 역명
: 탈출 실패 (시도 : 달팽이관역)
3. ■■, ■■■■, ■■■ 등 연쇄살인마의 이름으로 표기된 역명
: 탈출 성공 12인 (■■■■역)
4. 2008년, 2012년, 2016년 등 연도로 표기된 역명
: 탈출 실패 (시도 : 2024년역)
5. 천식, 뇌졸중, 녹내장 등 질병으로 표기된 역명
: 3인 탈출 성공 (시도 : 감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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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역에선 내린 사람 중 몸이나 소지품에 파란색이 없는 사람이 탈출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쇄살인마의 이름이 표기된 역에서 유독 탈출 인원이 많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누구도 그 연쇄살인마가 아니었을 테니까, 거의 모든 역이 정답이던 것이다.
‘반대로 신체 부위로 된 역은… 사람에게 부위 하나가 없을 확률이 더 낮으니 탈출에 실패했겠지.’
연도로 표기된 역명도 마찬가지다. 2024년은 승객들이 다 살아본 연도라서 실패한 것이다.
이 논리를 도입하면, 지금 우리가 내려야 할 역도 분명해진다.
-나에게 없는 감정.
“……그러니까, 우리는 절대 지금 느끼지 않을 감정을 골라야 합니다.”
“예?”
여기서 급격히 까다로워진다.
‘사람은 대부분 희로애락을 다 느낀다.’
한 감정이 결핍된 부류의 사람이 아니면. 역을 고르기 대단히 어려워지는 것이다. 농도의 차이가 있어도 누구나 느끼긴 할 테니까.
그러니….
농도로 표현되지 않는 어떤 평면적 상태를 표현하는 감정.
‘개념으로는 존재하지만, 사실 그것에 완벽히 처하긴 굉장히 힘든 감성.’
이걸 골라야 한다.
[이번 역은 태평, 태평입니다.]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번에도 평범한 감정이 역명으로 나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우리는 ‘저 사람 참 태평하다’라는 표현을 일상에서 자주 쓰기도 하니까.
하지만….
‘남의 상태를 추측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야.’
자기가 태평하다고 표현하는 사람을 별로 없다.
그럴 만도 하다.
사전적 의미로 태평이란 ‘마음에 아무 근심 걱정이 없음’이란 뜻이다.
하지만 정말로, 사람이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이 태평할 수 있는가?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겠지.
특히 이런 극한 상황에서는 말이다.
“이번 역이 정답입니다.”
“…!”
“여기서 내릴 겁니다.”
자신감 있게, 확신 있게 말하고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즉각 일어섰다. 사람들이 엉겁결에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쳐다보았다.
“여, 여기서요?”
“예.”
그리고 눈을 붙잡고 있는 부상당한 신입사원에게 다가가서 일어서도록 도왔다.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아, 가, 감사….”
문 앞으로 부상자를 인도하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따라왔다. 이제 다 밑장 못 뺀다.
우리 같이 나가는 거야.
‘좋아.’
이대로 사람 사이에 끼어서 탈출….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
근데 열린 문밖이 피바다네.
“…….”
아니… 선 넘는, 아니, X발 이런…….
‘살려줘.’
“김솔음 씨?”
고영은 씨 뒤로 숨을 뻔했다.
사회인의 마지막 체면이 날 막았다.
대신 나는 고개를 삐걱거리며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여기가… 확실하다고요?”
“예.”
하필 그렇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내리자고 설득할 미사여구가 안 떠오른다.
아니, 애초에 나부터 안 내리고 싶다.
누가 안 내려도 된다고 설득해 주면 좋겠다. 제발 좀.
“…저기! 역시 전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예?
고영은 씨?
“저희 중에 유일하게 지금 자기 의견에 확신이 있는 분이잖아요. 다들 무서워하고 있는데 계속 혼자 침착하시기도 하고요.”
제가요?
“아까 그 사람은 자기 혼자 내리려고 그 난리를 쳤는데… 최소한 착한 사람 의견을 들을래요. 저는.”
그리고 고영은은 먼저 용감하게 문밖으로 나섰다.
다 녹슬어 빠진 승강장에서는 음산히 불빛이 깜박이고, 드러난 철골 위 파이프에서는 물 대신 액체가 떨어진다.
고영은의 어깨 위로 피가 떨어졌다. 하, 하….
“김솔음 씨?”
“…….”
“전 염려하지 마십쇼. 저도 믿습니다! 가시죠!”
부축 중이던 부상자가 재촉해 줬다.
아마 본인 의사를 고려하느라 내가 머뭇거린다고 생각한 듯했다. 나도 스스로 고마운 건지 원망스러운 건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덕분에 자연스럽게 고영은의 뒤를 따라 나갔다. 그 뒤로 갈팡질팡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 내렸다.
그래도 맨 마지막으로 나가진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과하기 쉬운데, 사실 맨 끝에 서는 게 가장 무섭기 때문….
‘…하.’
이쯤 되니 내가 나를 손절하고 싶어진다.
“계단으로 가요?”
“예.”
고영은 씨는 이 와중에도 아직 열린 다른 칸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저기요! 다들 내리세요! 여기가 정답이에요!”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경계해서 안 내리려는 사람도 많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저 말 듣고 한 사람이라도 더 내린다면 그 사람은 살리는 거지.’
좀 존경스럽다.
아니, 그 존경의 감정에, 내 온 신경을 쏟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부상자를 부축하기로 한 건 정말 탁월한 결정이었다. 신경이 분산되고 힘이 풀리려다가도 반사적으로 참게 된다.
모든 쫄보에게 추천하고 싶다.
물론 이딴 개 같은 상황에 처할 겁쟁이는 별로 없겠지만!
“으으으….”
“걷, 걷죠.”
사람들 사이에서 최대한 주변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걸었다.
계단이 보였다.
‘부적 같은 게 덕지덕지….’
그것마저 정상적인 몰골이 아니라는 걸 깨닫자 전신의 땀구멍에 소름이 돋았으나….
‘올라가는 감각에만 집중하자.’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걸었다.
곧, 눈앞이 일렁인다 싶더니…….
[이야! 축하합니다, 신입사원 여러분!]
어느새 우리는 강연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
밝은 조명.
현대적이고 쾌적한, 넓은 실내.
확 현실감이 돌아오는 가운데, 눈앞에 거대한 스크린에는 어느새 선명한 문구가 떠 있다.
<경> 수습기간 수료 <축>
:축하드립니다. 귀하는 백일몽주식회사 현장탐사팀에 정식 채용되셨습니다.
“하…….”
“아!!”
같이 탈출했던 사람들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머릿수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일곱.
칸에 남아 있던 사람 전원.
‘살았다.’
괴담 <심연교통공사에 어서오세요>에서, 같은 칸의 10명 중 7인 탈출.
[이제 선물 증정식이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