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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아비규환의 괴담 속에서 한 장의 생존 티켓이 등장했다.

마치 영화처럼 말이다.

그리고 허상도 아니다.

‘방송된 분실물을 가지고 내리면, 승무원을 만나는 즉시 역사 밖으로 안내해 준다….’

희망의 빛은 맞다.

문제는 방금 안내방송으로 나온 분실물이 말도 안 되게 기괴한 거란 점이지만.

“방금 뭐라고 했죠? 20대 성인 남성…?”

“A형 성인 남성의 왼쪽 안구.”

고영은이 퀭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A형은 아마… 혈액형 같죠.”

“예…….”

지독한 침묵이 흘렀다. 벌써 겁을 먹은 듯했다.

‘…이대로 그냥 넘길까?’

어차피 정답 역에서 내리면 전원 생존할 수 있다. 괜히 한 명이 먼저 탈출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쉽게 진행되진 않았다.

“그, 그래도 찾아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맞아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이 신입사원들이 안내방송을 강력하게 의식한 나머지, 도저히 그냥 넘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일단은 둬보자.’

“혹시 나이가…?”

“아, 30대입니다.”

“동안이시네요. 아, 저는 B형이고요. 해당 사항 없습니다.”

“저도….”

사람들은 저마다 ‘20대 A형 성인 남성’에 해당하는지 서로 점검했다.

하지만 조건에 딱 해당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고, 이윽고 질문은 나에게까지 돌아왔다.

“혹시 김솔음 씨는…?”

간단히 대답했다.

“AB형입니다.”

사실 거짓말이다.

난 A형이 맞다.

‘하지만 내가 대상자라는 걸 굳이 밝힐 필요는 없다.’

내가 이 상황에 수혜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면 이득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오해받아서 차후에 설득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군요, 그럼 백사헌 씨는….”

“잠시만요.”

갑자기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 비장한 얼굴로 손을 들어 올렸다.

“사실…… 제가 딱 맞습니다. 그 기준에!”

“아!”

꽤 비장한 어조로 말을 꺼냈는데, 아무래도 자칫하면 본인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았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는데 말이지.’

그리고 급작스럽게 밝힌 이유도 분명했다.

[이번 역은 분노, 분노역입니다.]

새로운 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기 때문이다.

분실물을 받기 위해, 역무원이 기다리고 있을 역이.

자진해서 나온 신입사원의 얼굴에 긴장이 얼룩졌다.

“다른 분은 없으신 겁니까?”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아이고.”

대화를 듣던 내 옆자리의 백사헌이 탄식하더니, 상대에게 물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A형이시라고요?”

“예예.”

“안 됐네.”

그리고 주먹이 날아갔다.

“…?!”

자신이 A형 20대라고 밝힌 신입사원의 왼쪽 눈에 무자비하게 주먹이 꽂히며 끔찍한 파열음이 났다.

백사헌이 상대방을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모서리로 가격한 것이다.

거의 눈이 터져도 좋다는 식의 가격이었다.

“억,”

그리고 비명도 제대로 뱉지 못한 사람이 넘어지는 순간.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

백사헌은 가볍게 쓰러진 사람을 뛰어넘어서 열차 밖으로 나갔다.

“바, 방금….”

“악!!”

“당신 뭐야?”

한발 늦게 사람들이 경악해서 외쳤다.

백사헌은 피식피식 웃었다.

“바보들아. 눈 하나로 탈출할 수 있으면 얼른 해야지!”

“…!”

“하차할 수 있다고 했잖아!”

아무래도 백사헌은 안내방송의 행간 맥락을 정확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분실물을 발견하신 분께서는 다음 역에서 하차하시어 역직원에게 분실물을 인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안내방송에 주목해야겠다는 힌트가 있긴 했어도, 아주 대담한 판단력이었다.

“하긴… 자기 목숨을 남한테 책임지라고 하는 인간한테 그런 건 기대하긴 어렵나.”

“허?!”

게다가 막말을 난사하면서 백사헌은 태연했다. 아무도 감히 못 따라 나올 것을 확신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다.

하차하면 안 되는 역에서 내렸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다들 봤으니까.

“저, 저 사람….”

고영은 씨가 너무 열받았는지 얼굴이 시뻘게졌으나, 나는 이제야 뭔가 맞아들어가는 듯한 시원함도 같이 느꼈다.

어쩐지!

별칭은 독사.

<어둠탐사기록>에서 묘사된 백사헌의 모습들은 저런 성격에서 나왔다고 해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다.

신입사원이라 아직 사회의 때가 안 묻어서 괜찮은가 했는데, 아무래도 원래 저런 성격인 모양이다.

[출입문이 닫힙니다.]

그 와중에 백사헌은 열차 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쨌든 탈출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왼쪽 눈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저런…….’

근데… 그거 말이다.

‘그럴 필요 없었는데.’

나는 다들 백사헌에게 주목한 틈을 타서, 뒤에서 몰래 짐칸에 손을 올렸다.

‘아까 분명… 보였지.’

그리고 깊게 쓸어내리자,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뭔가가 잡혔다.

손을 당겨서 물건을 확인했다.

기묘한 휴대형 렌즈통 같은 것 안에는, 안구 하나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라벨.

[A형 / 여성 / 27 / R]

이게 뭐냐면, 바로 분실물 후보다.

‘애초에 분실물이라는 건 내 것이 아니라 남이 잃어버린 거잖아.’

사실 이 안내방송은 짐칸에 있는 몇 가지 분실물 후보 중 묘사와 정확히 일치하는 진짜를 가지고 내려야 하는 보물찾기 방식이었다.

뭐 우연히 자기가 가진 걸 주고 탈출한 사례도 있긴 하더라.

‘이제 백사헌이 여기 해당되겠지.’

그러나 만일 자기 왼쪽 눈을 ‘반납’하지 않아도 됐다는 걸 알면, 어떨까?

이미 스크린도어는 닫혔다. 그래서 전동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승강장으로 몸을 돌리던 백사헌과 잠깐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안구가 담긴 렌즈통을 잘 보이도록 문을 향해 들어 올렸다.

라벨을 가렸으니, 단 하나만 잘 보일 것이다.

안구.

-…!!

문 너머,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본 백사헌의 표정이 변했다.

그러나 이미 타이밍은 늦었다.

[열차가 분노역에서 출발합니다.]

열차가 떠난다.

나는 백사헌이 공격한 신입사원을 돌아보았다.

왼쪽 눈에 상처를 입힌 것을 보면, 백사헌은 자기가 가진 것 외에 다른 ‘정답 분실물’을 제거하려고 한 거다.

‘혹시 분실물로 인정받는 게 하나뿐일까 봐 이런 거겠지.’

혼자서 탈출한 것 자체야 각자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니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선을 넘었으니까.

다시 고개를 문으로 향했다.

저 뒤에서, 스크린도어를 몇 번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멀어지는 승강장에서 기괴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 특유의 비명이 어렴풋이 들린 듯했다.

[역직원에게 분실물이 무사히 양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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