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1권 : 황제 사냥꾼 [제4장] – 묻은 것과 믿은 것 3
산공부사 파라말 아이솔은 악랄한 싸움꾼이었다. 싸움이 최선 책일 때도 싸웠지만 최악의 결과를 얻을 것이 뻔할 때도 싸웠다. 그는 싸움 자체를 즐겼다. 인정하지 않지만 파라말은 상대를 도 발하여 격분시킬 때 쾌감을 느꼈고 상대의 급소를 단번에 내려칠 때 전율을 느꼈으며 상대가 비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볼 때 황홀 감을 느꼈다. 그런데도 파라말이 상종 못할 악한으로 취급되지 않 는 까닭은, 그의 폭력성이 바둑판의 19로(路) 위에서만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런 파라말에게 눈앞에 펼쳐진 바둑판은 심히 만족스럽지 못 했다. 상대의 착점을 바라보던 파라말은 참을 수 없는 기분으로 바둑판을 가리켰다. 멍한 얼굴로 파라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던 스카리는 욕설을 내뱉었다. 파라말이 말했다.
“안 되겠습니다. 공의 마음이 스무 번째 줄에서 방황하고 있으 니 그만두도록 하지요.”
스카리는 반대하지 않았다. 돌을 쓸어 모아 통에 담으며 스카리는 사과했다.
“미안하게 됐군, 파라말.”
“아뇨. 괜찮습니다. 수담을 나눌 수 없으면 잡담이라도 나누지 요. 무슨 생각에 그리 골똘히 빠져 계신 겁니까?”
파라말이 짐작한 것처럼 스카리는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 내지 않으면 터질 것 같은 상태였다. 하지만 말하려는 내용이 좀 어려운 것인 듯했다. 스카리는 먼저 파라말과 자신의 친분을 재 확인하려 했다.
“내가 자네에게 바둑 가르쳐 달라고 말한 것이 4년 전이었지? 그때 자넨 진짜 놀랐지. 쳇. 발케네 남자가 바둑을 배운다니 놀 랄 일이긴 하지. 하지만 자네는 이유를 묻지 않았어. 그리고 4년 동안 재미도 없을 텐데 내 상대를 해 줬지. 경고하는데 그게 재 미있었다고 말해서 나를 비참하게 만들지는 마.”
“좋습니다. 가끔 바둑판으로 공의 머리를 내려치고 싶었습니다.”
스카리는 웃었다.
“그런 정석은 배운 적이 없는데? 유용할 것 같으니 기억해 두 겠어. 어쨌든 이젠 자네에게 바둑을 배우려고 한 이유를 말해 주 지.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헨로 가문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두잖아.”
“그 사람들이야 유명한 애기가들지요. 현재 문중에서 가장 강한 니어엘 헨로 수교위 같은 경우에는 칼리도 백과 호선으로 둔 다더군요. 물론 승률은 높지 않지만.”
무심히 엘시를 거론했던 파라말은 스카리의 얼굴이 확 변하는 것을 보고 찔끔했다. 파라말은 스카리가 조금 전에 배운 정석을 활 용할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다행히 스카리는 그러지 않았다.
“에더리가 정말 그렇게 잘 두나? 난 그놈과 둬 봤다는 사람 본 적 없어. 자넨 둬 봤나?”
“아뇨. 백작의 집엔 바둑판도 없습니다. 칼리도의 본가에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면 그놈이 잘 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대장군에게 아첨 하는 놈들이 지어낸 말 아냐?”
“그건 아닐 겁니다. 칼리도 백과 둘 기회는 없었지만 백작과 호선으로 둔다는 사람과 둬 본 적은 있거든요. 제가 정선으로 둬 야 했습니다.”
“자네가 정선으로? 그게 누군데?”
“시련의 아르키스 대수호자입니다.”
스카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잠깐! 그게 무슨 개소리야. 도시 연합에 있는 대수호자하고 어떻게? 에더리가 미라그라쥬에 가기라도 했다는 거야?”
스카리는 당장이라도 달려들듯한 기세였다. 파라말은 몸을 뒤로 조금 젖히며 말했다.
“천만에요. 대수호자와 바둑을 둘 때 칼리도 백은 미라그라쥬 를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도 방문하지 않았고요.”
“지금 농담하는 거야? 만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바둑을 뒀다는 거야? 설마 대수호자가 국경을 넘어왔다는 건가?”
파라말은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뱀단지로 두는 겁니다.”
“뱀단지?”
“예. 뱀단지로 서로의 착점을 알려 주는 거죠. 그러면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동시에 바둑을 둘 수 있습니다.”
“허! 그런 방법이 있나? 그런데 폐하의 뱀단지를 그런 시시한 짓거리에 쓴다고?”
“물론 세 번째 벽난로 방을 이용한 것은 아닙니다. 한계선 남 쪽으로 가면 이곳만큼 뱀부리미가 귀하지 않지요. 그런 자들의 도움을 받아 바둑을 두는 겁니다. 공께서야 바둑 둘 줄 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셨으니 기계의 이야기를 별로 접하지 못하셨겠 지만 기객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름 높은 기객이 제국 남부에 가면 시련으로부터 아르키스 대수호자의 대국 요청이 국경을 넘어오는 일이 흔합니다. 저는 비스그라쥬에서 몇 번 그렇게 뒀습니다. 백작도 그런 식으로 둔 적이 있다더군요.” 스카리는 겨우 파라말의 말을 이해했다. 하지만 엘시를 이해할 생각은 없었다.
“폐하의 대장군이 적국의 수괴와 바둑이나 둔다는 것도 말이 안 돼. 넋 빠진 놈.”
스카리를 당황에 빠트리고 싶지 않았기에 파라말은 그 비난이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산공부사는 적당히 중립적으로 들리는 말을 한 다음 대화가 원래의 방향으로 돌 아가도록 했다. 스카리가 말했다.
“그래. 헨로 가문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이야기를 듣고난 바둑을 배우기로 결심했어. 내가 발케네의 무식하고 거친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부냐의 가족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었거든.”
“대단한 결심을 하셨군요.”
파라말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스카리는 발케네 남자이 기 때문이다. 스카리도 동의했다.
“빌어먹을. 발케네를 통틀어 바둑 둘 줄 아는 남자는 나밖에 없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내가 지금 헨로 가문에 찾아가서 대 국을 하면 창피를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길 수 있는지 묻는 것이 아냐. 내가 바둑 둘 줄 안다는 건 자네밖에 몰라. 그런 사 람들에게 찾아가서 바둑 둘 줄 모르는 척하면서 바둑 좀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그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을까?”
“바둑 둘 줄 모르는 척하면서 상대를 놀라게 한다고요?”
“그래.”
“왜 그러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안 됩니다.”
“뭐야? 내 기력이 그렇게 형편없나?”
“아니요. 음. 체이다 헨로 정도라면 공께서 두 점 치수 정도로 해 볼 만하실 겁니다. 문제는 공의 기력이 그 사람들의 상대가 안 될 만큼 낮은 것이 아니라 그들을 속일 정도로 높지 않다는 점입니다. 공이 말씀하시는 것 같은 일은 상대보다 몇 치수 이상 높을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스카리는 주춤했다. 하지만 곧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처음 한두 판이면 돼! 자네가 가르쳐 줄 수 없나? 가르쳐주고 싶을 정도의 재능으로 보이면 된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파라말은 스카리의 속셈을 이해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저 기력 낮은 기객이라면 헨로 가문 기사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하 지만 기재가 있어 보이는 문외한이라면 가까이 두어 가르치고 싶 은 것이 또한 기사의 본성이다. 파라말은 발케네 남자가 좋아하 는 치하의 말을 꺼냈다.
“교활하군요.”
스카리는 흡족해했다.
“그런 식으로 그 가문에 접근하실 생각입니까?”
“부냐가 에더리와 약혼한 이후로 그놈들은 나와 모든 관계를 끊었어. 내가 초대해도 오지 않고 직접 찾아가면 사람 앉아 있질 못하게 해.”
“그래서 천재인 척해서 관심을 끌어 보겠다는 것이군요. 하긴 그 가문은 바둑 잘 두는 것만 아니라 좋은 기사를 키워 내는 걸 로도 유명하지요. 혁기에 재능이 있는 발케네 남자라면 호기심의 대상으로도 충분할 테고요. 하지만 안 됩니다.”
“도저히 안 되겠어?”
“발케네 공,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천재로 위장할 수는 없 습니다. 엄청나게 운이 좋으면 성공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실 패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이미 말씀드렸지만 헨로 가 사람 들은 애기가들입니다. 당신의 계획이 탄로나면 그들은 당신을 기 객이 아닌 사기꾼으로 생각해서 상종도 안 하려 들지 모릅니다.” 스카리는 신음했다. 파라말은 빙긋 웃고 나서 질문했다.
“그런데 그들에게 접근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질문을 받은 스카리는 파라말을 외면했다. 숨소리를 낮추고 싶 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때문에 스카리의 호흡은 더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스카리는 씹어 뱉듯이 말했다.
“자네가 짐작해 보지 그러나?”
“부냐 아가씨 때문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무슨 계획을 가지신 건지는 모르겠군요.”
“엉망이라잖아.”
“예?”
“부냐가 그렇게 되고 나서 남작은 산송장이나 다름없어졌다고 들었어. 가장이 그 모양이니 집안이 제대로 돌아갈 까닭이 없지. 당연히 풍비박산 날 지경이야. 쳇! 헨로 가문에서 바둑꾼을 그렇 게 키워 냈다면, 왜 어려울 때 코빼기 비치는 녀석이 하나도 없 는 거야?”
“아니요. 모르셔서 하는 말씀입니다. 그 계보에 속한 기객들 중 몇몇이 찾아와 스승을 도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자기 연명 하기도 바쁜 처지들인지라 남작이 사양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럼 아무 쓸모가 없지. 그래서 내가 가서 그 집안을 좀 돌봐 주고 싶은데, 빌어먹을. 나한테는 명분이 없잖아. 어차피 접근도 못하게 하고 말이야.”
파라말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제자가 되겠다는 겁니까?”
“바둑 배우려고 드나들면서 집안일 돌볼 수 있을 정도면 돼. 그런데 자네에게 배웠다고 말하면 제자가 될 수 없잖아.”
파라말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사제 관계를 밝힐 수 없 다는 기괴한 조건으로 4년 동안 스카리에게 바둑을 가르쳐 온 것 은 스카리가 내놓는 지도료가 상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시 스카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가 아는 남자들 중에서 자신을 거부한 여자의 가족이 곤경에 빠졌을 때 돕겠다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은, 그것도 상대가 불편하지 않도록 제자로 들어간다는 형식을 궁리해 낼 만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고민을 많이 하신 듯하군요. 발케네 공. 안타깝지만 모양이 안 좋습니다. 말씀하신 일은 칼리도 백이 해야 할 일입니다. 공께서 그러시면 주제넘게 나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엘시의 이름은 스카리를 다시 흥분시켰다.
“그러잖아도 그놈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에더리가 해야 할 일 은 그것이 아냐. 그놈은 당장 백화각에 가서 부냐를 꺼내야 해! 그 개새끼는 만병장이야. 그놈은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런데 안 하고 있다고! 내가 백병장이나, 아니면 십병장만 되었더라도 당 장 그렇게 했을 거야. 애초에 그깟 고자 같은 놈에게 만병장이라 는 것은 어울리지도 않아!”
바로 그렇기에 스카리에게는 백병장도 십병장도 주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파라말은 그 생각을 말로 바꾸지는 않았 다. 파라말은 달래듯이 말했다.
“칼리도 백은 삼가고 조심하는 미덕을 보이는 것입니다. 만병 장에 대해서 우리는 만 명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처신을 기대하니까요.”
“자기 앞가림 못하는 바둑꾼들도 찾아와서 도우려고 하는데 약 혼자 주제에 한번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삼가고 조심하는 건가?”
“발케네 공, 아시잖습니까? 백작은 대장군의 일만으로도 지쳐 쓰러질 정도로 바쁩니다. 이 전쟁 전에도 도망친 태위 때문에 백 작은 제국군 전체를 통괄하다시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 서 전쟁을 준비했고, 승리했으며, 전후 처리까지 하고 있습니다. 저는 칼리도 백이 잠잘 시간이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어쨌든 백작은 지금으로서 헨로 가문을 보살필 시간까지는 도저히 낼 수 없을 겁니다. 백작이 좀 더 여유가 생기면 헨로 가를 보살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에더리가 나설 때까지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고? 난 그렇게 못해.”
“조금만 기다려 보시지요. 어쩌면 파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스카리는 확연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찔끔했다. 그는 매섭게 파 라말을 노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이야기가 있어?”
“아니요. 제 추측이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 사정상 백작은 죄수 신분의 약혼자를 무한정 기다릴 수 없지요. 설령 그가 그러길 원하더라도 주위에서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의 주위에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뭐? 여자라니? 그 멍청이에게 칭찬할 점은 난봉질을 안 한다 는 것뿐인데. 그것도 지조가 있어서가 아니라 배짱이 없어서 그 러는 것이겠지만.”
“저는 적당한 여자가 있다는 의미로 한 말입니다. 정우 규리하지요.”
말을 꺼낸 파라말은 스카리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 조금 의아해했다. 스카리는 당황과 충격이 뒤범벅된 얼굴로 파라말의 말을 재확인했다.
“정우? 비셀스 규리하? 아이저 규리하의 딸 말인가?”
“예. 사정이 급하기로는 칼리도 백에 못지않은 그 처녀 말입니다.”
“설명해 봐.”
“그녀는 권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변 경백위를 계승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가진 인맥은 별 도움이 안 되는 도깨비들과의 친분이거나 당장은 쓸모 없는 규리하 가문의 인맥뿐입니다. 그런 꼴로 규리하령을 계승할 수는 없지요. 따라서 든든한 남편을 구해야 할 겁니다. 작금의 제국에서 좋은 남편감의 목록을 뽑아 본다면 역시 첫 줄에는 칼리도 백 이 들어가겠지요. 물론 락토 공께서 찬성하실 리 없지만.”
“응? 우리 아버지가?”
“예. 락토 공께서 엘시 백작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아시죠? 그런데 발케네의 목전에 엘시 백작이 온다면 춘부장께서 그 사실 에 감사하기는 어려우시겠지요.”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래, 분기탱천하겠지. 하지만 그 건 우리 아버지가 에더리를 몰라서 그래. 그 녀석이 넋 빠진 얼 간이라고 내가 아무리 말해도 믿으려 하지 않아. 황제의 대장군? 유일한 제국 만병장? 쳇. 자기 약혼자 한 명도 구하지 못하고 황 제의 눈치나 보는 옹졸한 놈이야. 가진 재주는 바둑돌 깔짝거리 는 재주와 칼 들고 주정 부리는 재주뿐이고. 그런 조무래기를 왜 무서워하시는지 모르겠어.”
파라말은 쓴웃음을 지었다. 무향의 정복자에 대한 평으로는 지 나치게 유치해서 맞장구를 치기조차 어려운 수준이었다. 물론 파 라말은 스카리의 그런 순진함도 좋아했다.
“어쨌든 엘시 백작과 정우가 결합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라 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난점이 해결된다면 두 사람 은 서로 어울리는 짝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지위를 생각한다 면 귀족원에서도 결혼을 반대할 명분이 없으니 락토 공께서도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어려우시겠지요.”
스카리는 팔짱을 끼고 파라말의 말을 숙고했다. 파라말은 크지 는 않지만 잘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았다. 토양이라는 것이 없는 하늘누리에서 개인적인 정원이라는 것은 유수부의 일개 경비병의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치다. 물론 발케네 공의 입장에서 는 검약의 절정이라 해야겠지만.
조금 후 스카리가 약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파라말.”
“예.”
“자네는 내 친구지?”
“아뇨, 스승입니다.”
스카리는 웃음을 머금었다.
“좋아. 스승. 사실 비셀스 규리하가 좋은 신붓감이라는 것을 내게 말해 준 사람이 자네가 처음은 아니었어. 그런데 신랑 후보 에 대해서는 좀 다른 말을 들었지.”
파라말은 ‘아’라고 말하듯 입을 조금 벌렸다.
“혹시 발케네에서 연락이 온 겁니까?”
스카리는 어디까지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파 라말은 그가 고민하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대답이 긍정일 것은 의 심하지 않았다. 스카리는 긍정했다.
“맞아.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 비셀스 규리하를 며느리로 선 택했다고.”
파라말은 쓴웃음을 지었다. 보나마나 일방적인 통고였을 것이 다. 암살공은 아들에게 너의 짝을 찾으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 라 내 며느리를 데려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스카리 또한 소심한 아들은 아니다. 파라말은 얼굴 비출 곳이 없으면 락토와 스카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면도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스카리가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에더리가 비셀스와 결혼하는 꼴을 볼 수 없어 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에더리와 그 여자가 결혼하는 걸 거부할 수는 없으니 대신 나를 밀어 넣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을 거야. 며느리의 지참금이 탐난다는 거지. 쳇. 노인네 과욕이야. 황제나 다른 대귀족들이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걸. 어쨌든 그 녀석과 나는 도대체 무슨 악연인지 모 르겠군. 항상 한 여자를 놓고 부딪히게 되니. 그런데 말이야. 폐 하께서도 에더리와 비셀스가 결혼하길 원할까?”
“용인도 아닌 제가 폐하의 흉중을 짚을 수 있을 리는 없지요.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듣긴 했습니다.”
“뭔데?”
파라말은 자신의 말이 스카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심스럽게 즐기며 말했다.
“폐하께서 부냐를 용서하지 않으시는 것은, 백작의 짝으로 다 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