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10장] – 바람 속에 던진 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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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10장] – 바람 속에 던진 돌 3


지멘은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도로 이용료를 지불하고 징수소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지멘이 추구한 것은 황제의 죽음이라는 평생 숙원도, 남쪽으로 가라는 아실의 당부도 아니었다. 지멘은 곧장 잠자리로 향했다. 물론 아 무도 그런 행동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둘씩 나뉘어 쫓아오는 추적자들 때문에 지멘은 제대로 잔 것이 몇 년 전쯤 되는 것 같 은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멘은 잠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배신감을 느꼈다.

로세이즈 징수소의 여숙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락했다. 그들 은 레콘 여행객들을 위한 편의 시설도 완전히 구비해 두었고 지 멘이 남달리 소탈함과 거리가 먼 레콘이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방 을 트집 잡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멘은 평범한 레콘들처럼 취 식이나 잠자리 문제에 대해서는 소탈한 편이었다. 결국 잠을 잘 수 없는 원인은 징수소의 방에 있지 않음이 분명했다. 그것은 그 의 내부에 있었다. 그러니까 지멘의 눈꺼풀 안쪽에.

눈을 감고 바라본 암흑 속에서 지멘은 엘시의 두 눈을 마주하 게 되었다. 집중력 외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눈빛이 그를 똑 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증오도 없고 원망도 없고 분노도 없다. 그저 집중력뿐이다. 지멘은 평범한 대응을 시작했다. 다른 생각 을 떠올려 보려 애쓴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머릿속만 혼란스러워졌고 그 혼란이 피로와 결합되자 견디기 힘든 압박감이 되었다. 지멘은 자신에게 폐소공포증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벽과 천장, 바닥을 때려부수고 싶은 충동 때문이다.

결국 지멘은 잠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건물 중앙에 있는 휴게 실은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이 또한 레콘들을 고려한 구조 인 듯했다. 추적자들은 천장이 높은 쪽에 모여 앉아 있었다.

지멘의 모습을 보자마자 추적자들은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었 다. 그러나 준람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준람은 지멘이 빈손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지멘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했다.

“준람.”

“지멘, 괜찮은가?”

쫓는 입장에서 어울리는 질문은 아니지만 준람은 그렇게 물었다. 지멘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엘시를 불러 줘. 그를 만나고 싶어.”

준람은 조금 고민하다가 쵸지를 돌아보았다. 쵸지는 꺼내 들었 던 철봉을 다시 허리에 꽂아 넣고 엘시를 찾아 떠났다. 론솔피와 주테카는 투덜거리며 다시 앉았다. 레콘들의 대치를 보며 대경하 여 일어섰던 여행객들과 당원들은 그제야 조금 안도할 수 있었 다. 하지만 이층에 있는 사람들은 난처했다. 지멘이 이층으로 이 어진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돌벽을 따라 만 들어진 돌계단이었기에 지멘이 앉을 만한 장소이긴 하지만 그 때 문에 이층에 있는 이들은 내려갈 길이 막힌 셈이었다. 그들은 서 로 눈치를 보다가 갑자기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당 장 내려갈 일이 없다는 듯한 태도로.

준람은 앉지 않았다. 쌍창을 다시 포개어 등 뒤에 꽂아 넣고 팔짱을 낀 채 지멘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몸을 옹송그린 채 앉아 있는 지멘의 모습은 아무래도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준람은 조 금 고민하다가 주테카와 론솔피 앞에 놓여 있던 술주전자를 집어 올렸다. 론솔피는 부리를 딱 부딪쳤고 주테카는 핏 웃으며 술잔 을 집어 건넸다. 준람은 주전자와 잔을 들고 지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잔을 지멘에게 내밀었다.

지멘은 준람이 내민 술잔을 보다가 받아 들었다. 준람은 잔에 술을 채워 주고는 주전자를 주테카 쪽으로 휙 집어던졌다. 한 손 으로 주전자를 턱 받아 낸 주테카는 술 더 가져오라고 외쳐서 당 황한 사람들에게 주전자가 비었음을 알려 주었다.

지멘은 술 한 잔을 천천히 마셨다. 준람은 돌벽에 등을 기댄 채 지멘을 바라보았다. 지멘이 잔을 내려놓는 것을 본 준람이 말 했다.

“아까 질문에 대답 안 했어.”

“뭐?”

“괜찮냐고 물었어. 안 좋아 보이는군.”

“좀 그래.”

“꼴사납군.”

“좀 그렇지.”

준람은 지멘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지멘 을 꾸짖고 성토할 준비는 잔뜩 해 두었지만 위로할 준비 같은 것 은 전혀 해 두지 않았다. 준람은 신경질적으로 수염볏을 꼬았다. 

‘젠장. 도무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준람은 어정쩡한 어조로 말했다.

“남쪽으로 간다고 했지?”

“응.”

“남쪽은 왜? 황제는 규리하에 있는데.”

빈 술잔을 들여다보던 지멘이 고개를 들었다.

“준람, 엘시는 어떤 사람이지?”

준람은 이것이 말을 돌리려는 술책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지멘 의 태도는 진지했다. 준람은 부리를 한 번 딱 부딪치고 말했다. 

“나는 엘시의 지휘를 받지는 않았어. 내가 군대를 나온 것은 12년, 아니 해가 바뀌었으니 13년이군. 13년 전이었어. 엘시가 군대에서 출세하기 시작한 건…… 그러니까 7년 전 타이모 사건 때잖아.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엘시의 지휘를 받은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엘시를 따라온 거 지?”

“엘시는 예비역 레콘들을 많이 챙기니까. 내가 건축 면허 따려 고 할 때 엘시가 도와줬어. 우리 레콘들은, 음. 무슨 말인지 너 도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건축 면허를 따기가 쉽지 않아.”

지멘은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멍하니 준람을 바라보았다. 준 람은 부리를 신경질적으로 부딪치고는 수염볏을 만지작거렸다. 

“그거 말이야, 그거. 흙을 개거나 할 때, 혹은 하수도를 파거 나…… 몰라?”

“아아. 그럼 너 그거 만지나?”

“아냐. 인간 일꾼을 써. 어쨌든 나한테 그런 문제가 있어서 면 허를 따기 어려웠어. 인간에게서 명의만 빌리는 방법도 있긴 하 지만 난 아내들을 챙겨야 하니까 그런 불확실한 방법은 쓸 수 없 었어. 그래서 직접 면허를 따려고 했지. 그때 엘시가 도와줬어. 그래서 알게 된 거야.”

“대장군이 예비역들까지 일일이 챙기는 건가?”

“처음부터 대장군이었겠나. 엘시가 보훈국장이었던 시절의 일이야.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군. 간단히 말해서 나한테 해 준 것같은 일을 맡는 부서야.”

“참 특이한 일이었지.”

갑자기 끼어든 것은 주테카였다. 지멘과 준람은 주테카 쪽을 돌아보았다.

“보훈국은 늙다리 장군들이 주로 맡는 곳이거든. 장성급이 맡 는 곳이긴 하지만 만년 수교위 퇴역하기 전에 한 계급 올려 주기 위해 맡기는 곳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야. 그러니 거기 들어가면 군대 인생은 대충 끝난 거라고 봐야 해. 야전군에서 팔팔하게 뛰 는 젊은 장군에게 보훈국장을 맡기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었지. 게다가 거길 나와서 대장군까지 올라갔으니 말이야.”

론솔피는 뜨악한 얼굴로 주테카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거 희한한 일이군.”

그리고 주테카와 론솔피는 엘시에 대한 잡담을 나누었다. 주로 제국군과 관련된 이야기였기에 지멘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준람이 말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사이야. 더 궁금한 것이 있어?”

지멘은 생각했다. ‘더 궁금한 것이 있나?”

“그러면 그 사람 레콘들을 잘 알겠군.”

“그런 것 같아. 왜? 설득해 보려고?”

지멘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준람을 바라보았다. 레콘은 설득에 별로 관심이 없다. 준람은 부리 끝을 문지르며 말했다.

“나도 설득하려고 했잖아. 용재에서 따라오지 말라고 했지.”

지멘은 그 기억을 떠올렸다.

“죽이고 싶지 않아.”

“누구 맘대로 죽인다는 거야. 네가 죽을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겠지.”

“너 이상해.”

“내가?”

“글쎄……이상해. 설명을 못하겠군. 아무튼 이상해. 그런데 나도 질문 좀 할까. 너하고 같이 다닌다는 꼬마는 어디 있는 거지?”

준람은 또다시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지금껏 더위에 지친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던 지멘의 눈에서 갑자기 불똥이 튀었다. 그리고 검은 깃털은 부풀어 몸이 세 배로 불어났다. 준람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고 잡담을 나누던 론솔피와 주테카는 황급히 일 어섰다. 그러나 지멘의 모습을 확인한 준람은 손을 들어 두 사람 을 만류했다. 지멘은 일어서지 않았다. 그는 주먹을 꽉 쥔 채 아 래쪽만 바라보았다. 준람이 왜 그러냐고 질문하려 했을 때 엘시 와 쵸지, 이레가 휴게실에 들어섰다.

쵸지는 지멘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긴장했다. 하지만 그 앞에 준람이 서 있는 것을 본 쵸지는 사태가 화급하지는 않다고 생각 했다. 쵸지는 철봉의 자루를 움켜쥔 채 론솔피와 주테카에게 몸 짓을 보냈다. 그들은 엘시와 지멘 사이를 막는 위치로 움직였다. 엘시는 지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를 불렀습니까, 지멘?”

지멘은 깃털을 눕혔다. 그는 휴게실을 죽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게다가 엘시와 그 사이에는 네 명의 레콘이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간격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기 좋은 상황 도 아니었고, 두리번거리는 지멘의 눈길을 본 엘시는 같은 사실 을 깨달았다.

“유료도로당의 규칙을 존중하기 위해 나는 당신에 대한 체포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당신이 당신을 보호한 유료도로당의 규칙에 보답할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건물 내에 있는 동안 나 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십시오.”

지멘은 반갑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하지.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에 걸고.”

“좋습니다. 내 방은 당신과 함께 들어가기엔 작으니 당신 방으 로 갑시다.”

휴게실의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은 분개했지만 그들에겐 말릴 권한이 없었다. 지멘과 추적자들은 지멘의 방으로 자리를 옮겼 다. 엘시는 지멘의 맹세를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모두 밖에 둔 채 홀로 지멘의 방에 들어섰다. 지멘이 말했다.

“담이 세군.”

엘시는 고맙다고 말하려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목례를 하고 나서 지멘에게 대화를 맡으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대장군이 나를 쫓아오는 거냐. 그것도 제국군 대신 레콘들 을 이끌고서.”

“이것은 군사 작전이 아닙니다. 대장군 엘시 에더리는 현재

휴식 중입니다. 당신을 쫓고 있는 것은 칼리도 백 엘시 에더리 입니다.”

“둘 다 너야.”

“맞습니다. 당신에겐 차이가 없겠지요. 하지만 그런 구분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알았어. 이건 어떨까. 나를 계속 귀찮게 하면 칼리도에 쳐들어가서 네 가족을 다 쳐죽이겠다.”

“내 집은 바닷가에 있습니다.”

지멘이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말투였다. 지멘은 당황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그것이 완전한 대비책이 될 것 같나.”

“하긴 당신은 배도 탔지요.”

지멘은 그 사실에 우쭐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사실을 상기 시킨 것에 화가 치밀었다. 엘시는 담담하게 말했다.

“지멘, 당신이 하려는 것이 협박이라면 별 소득이 없을 겁니 다. 나는 황제의 대장군입니다. 나 자신이나 가족들을 죽이겠다 는 협박은 수도 없이 받았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레콘이 보낸 것 도 있습니다. 쥐딤에서 혼쭐이 난 채 도망쳤던 레콘이 보낸 것입 니다. 당신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의 협박에는 내 주의 를 끄는 참신함이 별로 없습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있습니다만.”

“그게 뭐지?”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은 좀 독특하군요. 인간을 잘 아는군요.”

“무슨 소리야?”

엘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당신은 신부 탐색자였던 시절 금군 즈라더의 아들을 죽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랬는데?”

“금군 즈라더는 그 사실을 잘 알지만 폐하의 하명을 받기 전까 지 당신에게 무관심하게 행동했습니다. 물론 한 명의 신부를 걸 고 공정하게 싸운 결과이니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가족의 죽음 에 참을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거나 하지 않는 레콘의 특징 또한 즈라더를 무관심하게 행동하게 한 것 같습니다. 내가 아는 레콘 은 그런 것입니다. 당신은 레콘보다는 인간의 방법으로 협박하는 군요. 하긴 인간에게 협박하려면 인간의 방법을 써야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나에겐 통하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든 나를 잡겠다는 건가?”

“……예.”

지멘은 엘시의 대답이 조금 늦었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느꼈다. 하지만 그 지연은 용기의 부족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 다. 지멘과 단둘이서 방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에게 용감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지멘은 왜 그런 지체가 생겼는지 궁리 해 보았다.

‘아닌 척해도 역시 가족들을 걱정하는 것일까? 그때 엘시가 말했다.

“나도 질문 하나 하지요.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지멘은 그것을 감추어야 하나 생각했다. 아실이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그것을 알려 주면 제국군을 움직여 나를 막을 텐데.”

“이것은 군사 행동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너와 네 명의 레콘만 나를 따라온다는 건가?”

“거기에 내 몸종과, 어쩌면 뒤늦게 합류할지도 모르는 두 명의 레콘이 포함됩니다. 내가 소환한 것은 여섯 명의 레콘입니다만 도착한 것은 네 명이군요.”

엘시의 솔직한 태도는 지멘을 동요시켰다. 지멘은 곰곰이 생각 해 보았지만 아실이 목적지를 감추라고 말한 기억은 없었다. 어 차피 그의 뒤를 따라온다면 알게 될 일이다. 한편, 지멘은 아실이 가라고 했기에 가고 있을 뿐 자신이 왜 그곳으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멘은 어쩌면 엘시에게서 자신이 그곳에 가야 하 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텐그라쥬로 가고 있다.”

지멘은 엘시의 반응에 놀라면서도 약간의 기대감을 느꼈다. 엘 시가 갑자기 긴장을 드러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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