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8장] – 아는 것과 우는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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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8장] – 아는 것과 우는 것 1


이 글을 잘 보게. “아, 이런. 발케네 놈들이 내남 편을 훔쳐갔어!” 펜조일의 유일한 소설에 나온 대목 이지. 읽어 봤겠지? 제군들은 어렵지 않게 이것이 무 슨 뜻인지 이해할 거야. 하지만 이것이 소설의 일부 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혹 안다 해도 전후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정서, 즉 연인에서 남편 으로 바뀐 후 남자에게 일어난 변화를 한탄하는 여주 인공의 정서는 느낄 수 없을 거야. 그 가상의 청자는 무서운 납치극이 일어났다고 착각할 수도 있단 말이 야. 이 대목에서 언어의 불확실성을 논파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 하이스 대학 문학 강의 중

아는 것과 우는 것

자유무역당원이 아니라도 유료도로당에 악감정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많다. 이들은 유료도로당의 사업과 산적질의 차이점을 파 악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거칠게 보면 유료도로당이든 산적이든 행인에게 돈을 받는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으니 이런 의구심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그런 자들도 주갈과 잠바이를 잇는 그리 미 유료 수도(有料隧道)에서는 악담을 멈출 수밖에 없다. 어쨌든 산적들은 16킬로미터 길이의 굴을 뚫을 수 없다.

세상에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는 유료도로당도 게라임 지울비가 당주로 선출되기 전까지 시구리아트의 허리에 구멍을 낼 엄두는 감히 내지 못했다. 따라서 시구리아트 산맥을 넘고 싶은 자들은 더 남쪽으로 내려가 시구리아트 유료도로를 이 용하거나 북쪽으로 올라가 러크에서 호라이체로 넘어가는 방법밖 에 없었다. 그리고 시구리아트 유료도로에서 러크까지는 이천 킬 로미터에 달한다.

시구리아트 유료도로 외에 시구리아트 산맥 동쪽과 서쪽을 잇 는 다른 길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길은 없었 다. 게라임 지울비는 산 위로 넘어갈 수 없다면 산 아래로 지나 가면 된다는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당주에 선출되자마자 게라임 은 원시제에게 특별 계약을 제안했다. 원시제는 그 계약을 받아들였다. 주갈에서 기다리고 있던 당원들 앞에 전원 레콘으로 구성된 고추냉이 여단이 나타난 것이다.

당원들은 그것이 인상적이라는 데는 두말없이 동의했지만 그 여 단병들이 굴착 전문가는 아님을 지적했다. 게라임도 그 지적에 동 의했다. 하지만 그는 열성적으로 고추냉이 여단의 레콘들에게 굴 착에 대해 가르쳤다. 전체 계약 기간 4년의 절반에 해당하는 2년 이 레콘들의 교육에 이용되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당원들은 지하수의 용출 가능성이 가장 적은 지대를 탐사해야 했다. 마침 내 교육과 탐사가 끝나고 굴착 작업이 시작되자 고추냉이 여단은 가장 비관적인 당원들도 환호를 보내게 만들었다. 그 광경을 본 어떤 당원은 레콘들이 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굴을 찾아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무자비한 속도로 굴을 파낸 고추냉이 여단병은 남은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수도를 완공시켰다. 게라임은 그 굴에 원시제의 이름을 따 그리미 유료 수도라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리미 유료 수도가 완성되자마자 유료도로당은 계약 사 항의 나머지를 이행하게 되었다. 원시제와 게라임이 맺은 계약은 향후 50년 동안 제국군 또는 예비역 제국군이 무상으로 유료 수 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심장 적출을 위해 시련 으로 간 제위 계승자를 지원하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던 제국군 이 첫 번째로 유료 수도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계약이긴 하지만 유료도로당은 마수 고객이 공짜 손님 이라는 것에 좀 찜찜해했다. 물론 그런 걱정은 기우로 밝혀졌다. 시구리아트 산맥을 넘어야 하는 사람들은 결코 싸다고 할 수 없 는 수도 이용료를 흔쾌히 지불했다. 그리미 유료 수도는 완공된 후 유료도로당의 전체 지부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드는 수익을 매해 올렸다. 그래서 그리미 유료 수도의 징수소에서는 전역증을 제시하는 예비역 병사들에게 ‘무료 통과’라고 말하면서도 결코 속상해하지 않았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리미 유료 수도의 서쪽 입구 에 선 레콘 주테카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는 징수원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주테카의 전역증을 들여다보던 징수원은 갑자기 징 수소장에게 달려가서 그것을 보여 주었고 그러자 징수소장은 서 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주테카는 어리둥절해하다가 혹시 자 기가 데리고 있는 사람 때문에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이봐! 이 녀석은 안전해. 내가 책임지겠어.”

주테카가 가리키는 ‘이 녀석’은 누가 봐도 약간 맛이 갔다고 표현할 인간 남자였다. 어쨌든 뺨에 구멍을 내서 거기로 침을 뱉 는 인간은 정상으로 보이기 어렵다. 드러난 가슴과 팔에는 칼자 국이 가득하고 속눈썹이 그대로 눈썹에 붙어 버린 것 같은 짙은 눈썹은 이나 벼룩이 득시글거려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그 아래 눈 또한 걸작이었다. 오른쪽은 정신병자의 눈이요, 왼쪽은 살인마의 눈이다. 누구라도 이런 사내와 함께 16킬로미터나 되는 굴을 걷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무장한 당원들이 그 안 을 순찰하고 있다 해도 말이다.

유료도로당원들이 걱정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 주 테카는 사내의 상체를 결박한 밧줄을 가리켰다. 그 밧줄의 다른 쪽 끝은 주테카의 왼쪽 손목에 묶여 있었다. 주테카는 그 결박이 튼튼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로 했다. 사내는 자신에게 양해를 얻 었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다. 주테카는 밧줄째 인간을 들어 올 려 휙휙 휘둘렀다. 비명을 지르는 인간을 무시하며 주테카가 외쳤다.

“보라고. 단단히 묶었잖아. 못 믿겠으면 와서 확인해 봐.”

징수소장이 다가왔다. 주테카는 인간을 땅에 내려놓았다. 비틀 거리던 인간은 결국 주저앉아 헐떡거렸다. 하지만 그는 쉴 팔자가 아니었다. 주테카가 확인해보라는 듯 왼쪽 손목을 불쑥 내밀 었기 때문이다. 밧줄에 질질 끌려오는 인간을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징수소장은 전역증을 내밀었다.

“엉겅퀴 여단에 복무했던 주테카시죠? 칼리도 백 엘시 에더리께서 당신에게 전하는 말이 있습니다.”

주테카는 놀란 얼굴로 전역증을 받아 들었다.

“엘시? 대장군 말이야? 잠깐. 내가 여기로 올 걸 엘시가 어떻게 알았는데?”

“모든 지부에 똑같은 전언이 왔습니다. 당신이 유료도로를 지나려 하면 전달하라고 했습니다.”

“아아, 그런가?”

“당신 외에도 야리키와 쵸지라는 레콘에게 가는 전언이 더 있 습니다. 혹시 그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안다면 당신이 직접 전해도 좋습니다.”

“글쎄. 난 그 친구들이 어디 있는지 몰라. 엘시가 나한테 무슨 말을 전했는데?”

“좀 길어서 적어 뒀습니다.”

징수소장은 도깨비지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든 주테카는 꼼 꼼하게 서신을 읽었다. 서신을 다 읽고 나서 주테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기묘한 짓을 시작했다.

징수소장은 유료도로당과 황제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계약이 예비역 제국병에게 유료 수도 앞에서 경매를 할 권한까지 부여한다고 믿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주테 카는 방해나 제지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는다는 태도로 외쳤다.

“자, 수도 이용료를 건질 기회다! 여기 현상 수배서 보이지? 그래. 이 녀석을 데리고 잠바이로 가면 금편 150닢을 받을 수 있 어. 그리고 정의 구현에 이바지했다는 자부심은 그 이상이지. 이 녀석은 여자와 아이까지 포함해서 아홉 명을 죽인 벌레 같은 놈 이거든. 이런 기회가 매일 오는 건 아냐. 내가 급히 나나본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이 녀석을 포기하는 거라고, 자, 정의를 사랑 하는 친구들. 불러 봐!”

현상범 경매라는 전무후무한 광경에 놀라 얼이 빠졌던 징수소 장은 결국 ‘여자와 아이까지 포함해서 아홉 명을 죽였다’는 대목 을 빼라고 주테카에게 조언했다. 주테카를 돕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편이 주테카를 빨리 쫓아 버리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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