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1장] – 분쟁을 음미하는 태도 5
주테카는 조약돌을 검지와 엄지 사이에 끼운 채 바닥에 쌓여 있는 돌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살피다가 결국 결심한 듯 손에 있던 돌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돌무더기는 달각거렸고 주테카는 긴장했다. 하지만 오래도록 살핀 보람이 있 어 돌무더기는 무너지지 않았다. 주테카는 조그마한 돌무더기를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주테카는 돌무더기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돌무더기가 박살이 났다. 튕겨 날아간 돌이 나무들을 땅땅 때 렸고 돌무더기 안쪽에 있던 돌은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주테카 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는 다시 돌을 모으기 시작했다.
준람이 끙 하는 소리를 내며 깃털을 부풀렸다. 깃털들 사이에 서 조약돌들이 후두둑 튀어나왔다. 몸을 툭툭 털면서 그는 다섯 번이면 충분히 참았다고 생각했다.
“그만해라. 아프다.”
주테카는 퀭한 눈을 들어 준람을 바라보았다. 준람 근처에 떨 어져 있는 돌들을, 나무 반대편에 앉아 있는 쵸지를, 으르렁거리 며 투석기 탄환으로 쓰임 직한 돌멩이들을 모으고 있는 론솔피를 본 주테카는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쌓고 있던 돌무더기를 발 로 밀었다. 준람은 론솔피에게도 말했다.
“하지 마라.”
론솔피는 주테카가 다섯 번 한 일이라면 자신도 그만큼 할 수 있다는 일종의 만민평등 사상을 개진하려 했다. 그때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조약돌의 비산을 피하고 있던 쵸지가 말했다.
“누가 온다.”
쵸지가 일어섰고 다른 세 명의 레콘들도 벌떡 일어섰다. 무의 식중에 바닥을 찬 론솔피는 도끼창 자루가 떠오르지 않자 의아해 하다가 곧 침울해졌다. 숲 사이에서 수레들이 나타났다.
수레들 주위에는 별다른 호위가 없었다. 맨 앞쪽의 수레 옆에 있는 사람만이 무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 사람도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레콘들은 다른 종족에게서 공포를 느끼기 어려우며, 그 다른 종족이 손이 하나뿐이라면 공포를 느끼는 것은 불가 능하다.
루시닌 수교위 또한 자신이 네 명의 포악한 레콘들을 겁줄능 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루시닌은 매섭게 노려보는 레콘들을 무시한 채 수레 뒤편으로 돌아갔다. 그는 한 손으로 수레에 담긴 무엇인가를 붙잡아 끌어내렸다. 곧 레콘들은 처참하게 두드려 맞 고 꽁꽁 묶인 대장군의 몸종을 보게 되었다.
“이레?”
준람의 말에 이레 달비가 고개를 들었다. 한쪽 눈은 두꺼비처 럼 부어 감겨 있다시피 했고 다른 눈도 실핏줄이 터져 벌겋게 변 해 있었다. 하지만 이레는 기세 좋게 몸을 일으켰다. 준람은 레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팔이 묶여 있는 탓에 균형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이레는 채 반도 일어나지 않 아 다시 고꾸라졌다.
땅에 쓰러져 죽는 소리를 내는 이레를 보던 루시닌은 한 손으 로 사이커를 뽑아 들었다. 그 순간 론솔피가 주테카를 머리 위로 집어 들었다.
“허튼짓하면 던진다.”
허공에서 버둥거리던 주테카는 론솔피의 말을 듣고 재빨리 무 시무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쵸지는 커다란 벼슬을 끌어내려 론솔피 쪽을 가렸고 준람은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루시닌 은 조금 기가 막혔지만 이 가공할 투척 병기의 위협을 순순히 수 용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교위는 충분히 세심한 동작으 로 이레의 결박을 끊은 다음 사이커를 도로 꽂아 넣었다.
이레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루시닌은 수레를 끌고 있던 사람 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러자 사람들이 수레를 놔둔 채 모여들었 다. 루시닌은 그들을 인솔하여 걸어갔다.
루시닌과 일꾼들이 숲 사이로 사라지자 쵸지와 준람은 이레에 게 다가갔다. 이레 또한 황급히 그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가주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가주님?”
“아니, 그러니까 대장군님이오.”
“아, 엘시, 모르겠어. 따로 끌고 갔거든.”
이레는 도대체 레콘이 네 명이나 있으면서 어떻게 대장군 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냐는 눈으로 준람을 바라보았다. 준람은 창피 스러운 표정으로 이레를 외면했다. 쵸지가 설명했다.
“그거, 소화차 말이야. 그것이 우리를 포위했어. 그놈들은 엘시 를 따로 데려가고 우리는 이렇게… 음. 여기를 그러니까…….”
“늪지요.”
“그래. 그 한가운데 가뒀어. 나는 이게 레콘만 빠져나갈 수 없 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너까지 집어넣은 것을 보니 인간도 제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인가 보군. 그런데 너는 어찌된 거냐?”
이레는 기운이 쭉 빠진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쵸지와 준람, 그 리고 주테카를 내려놓은 론솔피도 바닥에 앉았다. 이레는 베로시 토프탈 상장군의 망고 군단에서 있었던 일을 죽 설명했다.
“그리고 아까 그 나가 녀석이 저를 덮쳤습니다.”
“손이 하나뿐인 놈한테 당했나? 무슨 대장군 몸종이 그래?”
“저를 잡느라 손을 하나 잃은 겁니다.”
“그래? 어떻게?”
이레는 아픈 눈두덩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소드락 먹고 덤비기에 포기한 척하면서 시간을 끌었습니다. 소드락은 17분이 한계죠. 소드락의 효과는 놀랍지만 세상에 공짜 는 없습니다. 대가를 치러야 하지요. 나가들이 소드락을 먹고 심 하게 움직이면 약효가 떨어졌을 때 졸도할 수도 있습니다. 활동 이 거의 없었다 해도 잠깐 동안의 무력 상태는 어쩔 수 없지요. 세심하게 보면 약 기운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루시 닌 수교위는 설마 인간이 그런 것을 알 리 없다고 생각해서 방심 했겠지요. 그때 한 방 먹이고 사이커를 빼앗았습니다. 그 불쌍한 수교위는 제가 사이커에 익숙하다는 것도 짐작하지 못했겠지요. 재생시킬 수 있을 테니 부담 없이 잘랐습니다.”
“그런데 왜 잡힌 거야?”
“장소가 안 좋았습니다. 하필이면 군단 사령부였습니다. 저는 군단 전체가 이미 배신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 더군요.”
설명하던 이레의 앞에 주테카가 병을 하나 내려놓았다. 이레는 의아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주테카는 수레들을 가리켰다.
“저기 있더군. 먹을 것이 실려 있더라. 이거 술 같은데, 좀 마 셔. 그래야 할 것 같은 얼굴이군.”
이레는 고맙다는 얼굴로 병을 열었다. 향긋한 술 냄새가 번지 자 주테카는 만족한 얼굴로 수레로 달려갔다. 그제야 이레는 주 테카가 병에 담긴 것이 술인지 물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에게 먼저 건넸음을 알았다. 이레가 핏 웃는 모습을 못 본 척하며 주 테카는 술병의 주둥이를 깨물어 부수었다. 열린 부리 속으로 술 을 콸콸 쏟아 붓는 주테카를 보던 준람이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남쪽의 제국군 일부가 말썽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데.”
몸종은 단순한 하인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고위 인사의 지근거리에서 그들을 보좌하는 몸종들은 주인의 업무에 꽤 익숙 하고 주인의 사회 관계를 흡수한다. 따라서 이들은 제국 정부의 동량으로 취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레 달비 또한 대장군의 몸 종이니 장차 제국군에서 귀하게 중용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의 종형처럼 전투 분야에 종사하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제국군에 전 투병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준람은 이레가 엘시에 버금가는 상 황 파악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그럴 겁니다. 하지만 군의 반란은 아닐 겁니다. 베로시 토프 탈 상장군은 시모그라쥬 공작 팔디곤 토프탈의 조카입니다. 이 배후에 있는 것이 시모그라쥬 공작이라고 판단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는 조금 전에 군단 전체가 배신했다고 말했잖아.”
“좀 창피스러운 이야기가 되겠군요. 제국군 전체에서 항상 전
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시련과 마주하고 있는 남부의 제국군뿐입니다. 태위청에서는 군단의 장교들을 순환시키려 애씁니다만, 남부에서는 밀림과 나가에 익숙하지 않은 북부의 장교들을 꺼립 니다. 그것은 당연한 기피지요. 그러다 보니 한계선 이남의 군인 들은 계속 한계선 남쪽에서만 돌게 됩니다. 순환 자체도 별로 이 루어지지 않고요. 아무래도 사병화가 된 것 같습니다.”
준람은 부리를 부딪쳤다.
“군단이 사병이 되었다? 웃기는군. 그건 그렇다 치고 이유가 뭐지? 황제의 대장군을 붙잡는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지?” 이레는 어두운 얼굴로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레는 한참 후에야 그것을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었다.
“미안합니다. 몸이 아파서. 음. 글쎄요. 주인님이 행방불명이 된다면 시모그라쥬 공은 공석이 된 대장군 자리에 합당하다고 생 각되는 인물을 천거할 수 있겠지요. 혹은 황제의 자리에 합당하 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고를 수도 있을 테고.”
쵸지는 벼슬을 곧추세웠다.
“황제의 자리?”
이레는 입 주위를 훔치며 말했다.
“최악의 경우 반역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