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3장] – 비밀의 불씨 9

랜덤 이미지

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3장] – 비밀의 불씨 9


준람의 다리를 돌다리 위에 놓고 빠져나왔다는 주테카의 설명을 들은 이레는 손뼉을 딱 쳤다. 이레는 준람에게 말했다. 

“당신의 다리가 쓸모 있었군요.”

“네가 그 다리를 찾아 준 덕분이지.”

이레는 그제야 네 사람이 모두 자기 무기를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론솔피의 도끼창을 가리켰고 론솔피가 말했다. 

“아, 루시닌을 좀 협조적으로 만들어 줬지. 술술 말하더군.” 

레콘들이 무기부터 찾은 후에 이곳으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이레는 그 사실에 섭섭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레콘에게 무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저냐 나중이냐 하는 것이 항상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때 황당한 표정을 한 세레지와 엘시가 우물 밖으로 끌려 나 왔다. 세레지는 밧줄을 놓고 우물 가장자리를 밟으며 가볍게 뛰 어내렸지만 엘시는 쵸지가 내려 줄 때까지 밧줄 끝에서 대롱거렸 다. 그리고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이레는 작은 비명을 지르며 엘시에게 달려들었다.

“가주님?”

엘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이레는 그를 조심스럽게 돌려 놓았 다. 덥수룩한 수염과 지저분한 머리, 피폐해진 주인의 얼굴을 본 이레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그는 엘시의 어깨를 붙잡았다. 엘시가 눈을 떴다. 

“주인이다. 이레.”

이레는 목이 메었다.

“주인님…….”

“나를 좀 앉혀다오.”

이레는 엘시를 부축하여 앉혔다. 엘시는 주위에 서 있는 네 사 람을 어렵게 돌아보았다.

“어두운 곳에 오래 있어서 내 시력이 좀 좋지 않습니다. 준람 과 론솔피, 주테카, 왕벼슬인 것 같은데 알아볼 수는 없군요. 와줘서 고맙습니다.”

긴장하고 있던 세레지는 엘시가 레콘들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준람이 말했다.

“우리가 늦어서 눈이 상했군. 미안해.”

“아니요. 여러분은 내 마음의 ..”

“침입자다!”

네 레콘과 세 인간은 얼빠진 얼굴로 외침이 들려온 곳을 보았 다. 그곳에는 이레가 기절시켰던 병사가 고함을 빽빽 지르고 있 었다. 엘시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뭔가 좀 묘하게 낭만적인 말이 된 것 같군. 도망갑시다.” 

다음 순간 엘시를 제외한 여섯 사람은 법석을 떨었다. 쵸지와 준람이 동시에 엘시를 집어 드느라 하마터면 엘시를 찌그러뜨릴 뻔했다.론솔피는 주테카를 집어 들어 비명을 지르는 병사에게 집어던졌다. 아마 병사를 침묵시키기 위한 조처였겠지만 개미 잡 으려고 아스화리탈을 부른 격이다. 게다가 서두르느라 겨냥도 맞 지 않았다. 주테카는 병사 옆의 벽을 뚫고 들어가 버렸다. 기겁한 병사가 입을 다물긴 했지만 건물 무너지는 소리는 병사의 외 침 이상이었다. 

“이런, 젠장! 건물 좀 조용히 못 부수나, 주테 카!”

론솔피는 정말 뻔뻔한 레콘이라는 듯이 바라보는 세레지의 눈길을 무시한 채 외쳤다. 그동안 쵸지와 준람 사이에서는 겨우 타협이 일어났다. 쵸지가 “네 무기는 쌍병이잖아!”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쵸지가 엘시를 어깨에 메었고 준람은 이레를 론솔피에게 던졌다. 세레지는 그 모습을 보더니 무너진 벽 쪽으 로 달려갔다. 잔해 속에서 주테카가 걸어 나오자 세레지는 두 팔 을 들어 올렸다. 

“저를 집어 들 사람은 당신인가 보네요. 잘 부 탁해요.” 

그렇게 쵸지가 엘시를, 론솔피가 이레를, 주테카가 세 레지를 집어 들자 준람이 쌍창을 서로 부딪치고는 앞으로 뛰어나 가며 외쳤다. 

“내가 길을 열지!” 

용감한 외침이었지만, 이레는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준람은 이레가 넘어왔던 담과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간 것이다. 가까운 곳에 담이 있다고 외치려 했지만 론솔피가 후닥닥 달렸기 때문에 이레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긴 네 명의 레콘이 그들의 무기와 함께 있으니 그 것을 막을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셀 수교위는 그 많지 않은 사람에 포함되는 인물이었 다. 지셀 수교위는 침입이 일어난 곳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었 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대장군이 갇혀 있는 우물 쪽일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온 굉음을 듣자 그는 그런 소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레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갇혀 있던 레콘들이 어떤 방법으로 도망쳤거나 다른 레콘이 온 것이다. 지셀은 둘 중 어느 쪽이 옳을지 고민하는 대신 그들이 레콘이라는 사실에 집중하기 로 했다. 그래서 지셀은 밤 동안 내려간 체온 때문에 밖으로 나와 침입자를 확인하기는커녕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상태에 서 고함을 질렀다.

“저기 온다. 물을 뿌려라!”

그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들려온 엄청난 소음에 지셀은 자신의 행동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