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3장] – 비밀의 불씨 8
주테카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외치려 했다. 하지만 말이 제대 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부릅뜬 눈으로 쵸지의 손끝을 바라보았 다. 돌로 만들어진 것처럼 생기 없이 움직인 그 손이 이제 물통 근처에 떠 있었다. 몇 센티미터만 더 움직이면 물통에 손이 닿을 것 같았다.
그때 벽력 같은 고함이 들려왔다.
“됐어! 왕벼슬, 주테카! 이리 와 봐!”
쵸지는 깜짝 놀라 손을 끌어당겼다. 주테카는 기뻐하면서도 뭔 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쵸지는 멍한 표정으로 고함이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론솔피의 외침이었다. 뒤이어 준람의 외침도 들려왔다.
“빨리 오지 않고 뭐해?”
주테카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쵸지의 어깨를 감싸쥐며 끌어당겼다. 급한 움직임 때문에 쵸지는 몇 걸음 비틀거렸다. 주테카가 말했다.
“빨리 가 보자, 왕벼슬!”
쵸지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채 달려갔다. 그가 달려가는 모습을 본 주테카는 안도하며 뒤를 돌 아보았다. 거기엔 물통이 있었다. 주테카는 물통을 향해 부리를 한번 딱 부딪쳐 준 다음 쵸지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쪽은 다리가 있는 방향이었다. 주테카는 론솔피와 준람이 왜 기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 그 다리가 물 위로 떠오르기라도 했나? 자신의 생각에 웃음을 터뜨릴 뻔했을 때 주테카는 물가에 도달했다. 그리고 주테카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즐거워서가 아니라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물 위로 떠올라 있었다.
정신없이 웃으며 주테카는 생각했다. 이게 환상 계단인가? 생 각한 대로 변하네? 하지만 겨우 웃음을 멈춘 주테카는 그것의 정 체를 깨달았다. 물 위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준람의 이동교였 다. 준람은 자신의 이동교 일부를 해체하여 수면 아래에 있는 돌 다리 위에 얹어 놓은 것이다. 그러자 그것은 나무다리가 되었다. 물 위에 있는 나무다리였다.
시커먼 것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론솔피였다. 론솔피는 다리를 밟지는 않았다. 대신 그 위를 날아갔다. 이레의 말처럼 그들은 20미터 정도는 손쉽게 뛸 수 있었다. 도약하는 공간 아래쪽에 무 엇이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론솔피는 건너편에 내려서서 주먹 을 힘껏 들어 올렸다.
“빠져나왔어! 젠장. 너무 쉬워서 화가 나네!”
이동교의 제작자인 준람도 자신의 다리를 밟지는 않았다. 그는 론솔피처럼 앞으로 훌쩍 뛰었다. 그리고 다리 위를 붕 날아가서 가볍게 땅에 내려섰다. 나발칸의 레콘 준람은 점잖게 자신의 기 쁨을 표현했다.
“같은 바람이 불어도 이쪽의 냄새가 더 좋군.”
주테카는 껄껄 웃었다. 두 사람을 따라 앞으로 뛰려던 주테카 는 문득 쵸지를 떠올렸다. 고개를 돌린 주테카는 쵸지의 커다란 벼슬을 보았다. 그것은 주테카가 있는 쪽으로 늘어져 있어서 쵸 지의 얼굴을 조금 가렸다.
“어이, 왕벼슬?”
쵸지는 흠칫하며 주테카를 돌아보았다. 주테카의 눈 속에서 자 기 얼굴을 보던 쵸지는 웃으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주먹을 우두 둑우두둑 꺾은 쵸지가 말했다.
“가자, 주테카.”
쵸지는 땅을 박찼다. 물 위로 힘차게 날아오른 쵸지는 앞의 두 레콘처럼 건너편에 도달했다. 하지만 두 사람과 달리 그는 그대 로 달려갔다. 준람과 론솔피는 당황하여 쵸지의 뒤를 따랐고 주 테카도 물 위를 건넜다. 세 사람이 쵸지를 따라잡았을 때 쵸지가 기운차게 외쳤다.
“어어이, 아직은 한 토막!”
쵸지의 앞쪽에는 조금 전 보급품을 가져다 놓고 떠나던 루시닌 수교위와 병사들이 있었다. 쵸지의 외침을 들은 루시닌은 황급히 뒤로 돌았고 쵸지를 발견하자마자 온몸의 비늘을 부딪쳤다. 쵸지 는 무도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손으로 무엇인가를 갈가 리 찢는 시늉을 해 보이는 장난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두 토막, 세 토막, 네 토막…….”
그 동작과 외침에 혼이 빠져 버린 루시닌은 가지고 있던 소드락을 모두 입에 털어넣어 버렸다. 굉장한 속도로 도망치기는 커녕 발작을 일으켜 그 자리에 고꾸라지는 루시닌을 보며 쵸지는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