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10장] – 바람 속에 던진 돌 6
지멘은 울분에 찬 함성을 내질렀다. 그 함성은 대선풍의 굉음속에서도 크게 울렸다.
대선풍은 말로 듣던 것 이상이었다. 수십 년 동안 움직이지 않은 그 비정상적인 회오리는 조금 전 생겨난 것처럼 치열한 속도로 맴돌았다. 그것이 자아내는 굉음은 먼 곳에서도 지멘을 이끌 어 주었다. 그러나 주위의 폐허는 놀랍도록 고요했다.
식물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물이다. 생물은 자의에 따라 움직 이며, 식물 또한 놀라운 속도로 움직인다. 그것은 뿌리를 뻗고 가지를 늘어뜨리고 씨를 뿌린다. 지멘을 둘러싸고 있는 폐허는 식물과의 영역 다툼에 그다지 열의가 없었다. 부러진 기둥은 넝 쿨을 위한 지지대가 되었고 반파된 벽은 음지를 선호하는 풀들을 위한 일산이 되었다. 나무 뿌리는 포석을 파헤치고 부수어 흙으 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하텐그라쥬였다.
나가의 도시들 중 가장 오래된 냉혹의 도시. 인간들은 그것을 침묵의 도시라고 불렀다. 더 오래 살아남은 명칭은 결국 인간의 것이 된 듯하다. 2차 대확장 전쟁 당시 파괴된 나가들의 도시는 거의 재건되었지만 하텐그라쥬는 재건되지 않았다. 도시 한가운 데서 자리를 떠나지 않는 대선풍 때문에 재건이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북부의 승리에 대한 증거로써 이곳을 폐허로 남겨 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설명이 옳은 것인 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 폐허와 식물, 대선풍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그리고 그것은 지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몇 시간 동안 주위의 폐허를 뒤졌지만 지멘이 찾아낸 것은 원 래 무엇이었는지 짐작하기도 힘든 녹슨 쇠붙이 몇 개뿐이었다. 이곳은 완전한 폐허다. 고고학자들이라면 보물창고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지멘은 고고학자가 아니다. 그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왜 제국을 종단하여 이곳까지 왔는지 알 수 없 었다.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제국의 남쪽 끝을 지키고 있는 대선풍뿐이지만, 그것은 주위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외에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았다.
지멘은 잡초 속에 묻혀 있던 돌을 뽑아 들었다. 어떤 건물의 일부였을 그 돌은 오래된 침식에 닳아 원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지멘은 그것을 힘껏 집어던졌다.
대선풍에 휘말린 돌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지멘은 잠깐 동 안 그것을 추적할 수 있었지만 회오리 반대편으로 사라진 후에는 더 이상 그것을 볼 수 없었다. 어딘가에 떨어졌거나 혹은 바람을 타고 계속 돌고 있을지도……………
“나도 가끔 그런 일을 하지.”
놀랍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지멘은 그 고운 목소리를 듣자 마자 상대가 나가임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린 지멘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역시 나가 여자였다.
나가는 꼿꼿한 자세로 서서 지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멘은 그 옷차림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입는 것인지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그 옷은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능 은 별로 없어 보였다. 나가들에게 완전히 적합한 환경이니 그런 옷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기괴하지만 조야하지는 않은 옷이었 다. 나이는 알 수 없었다. 허물을 벗는 나가들에게는 노화의 증 거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가들끼리는 알아볼 수 있는 흔적 이 있다고도 들었던 것 같지만 지멘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나가가 아닌 자들은 알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몇 시간 동안 폐허를 뒤졌을 때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지멘은 기묘한 기분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멘이 바라보는 가 운데 나가는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조그마한 돌을 들어 힘껏 집어던졌다. 꽤 먼 거리였지만 여자는 익숙하게 대선풍속 에 돌을 던져 넣었다. 돌은 순식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네가 던진 돌처럼 잘 보이지는 않는구나. 머리 위를 조심해. 네가 던진 돌은 꽤 크니까 금방 떨어질지도 몰라.”
그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꽤 먼 곳이었다. 지멘 은 자신이 던진 돌이 회오리에서 빠져나와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 다. 나가의 지적이 맞았다고 말해 주려던 지멘은 문득 하대를 들 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았다. 그녀의 말투는 자연스러웠다. 지멘은 억지로 화를 내는 대신 주의 를 촉구하기로 했다.
“겸손함을 보여라, 나가.”
여자는 고개를 갸웃한 채 지멘을 바라보다가 곧 미소를 머금었다.
“아아, 그래. 정말 레콘과 똑같구나.”
“레콘과 똑같다니. 나는 레콘이다.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여자는 미소를 거두었다. 지멘은 자신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짓 는 표정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군. 네가 내 추측과 다른 인물이거나, 그 렇지 않으면 네가 네 정체를 알지 못하거나. 둘 다 가능성이 충 분하군. 일단 묻겠어. 너는 용이 아니야?”
지멘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시력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여자는 차분하게 말했다.
“용은 무엇이든 될 수 있어.”
“그거야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여자는 두 손을 조금 펼쳐 보이며 말했다.
“너는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거야. 내 말 을 잘 생각해 봐. 용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어. 그러니까 용은 나가나 인간, 도깨비, 또는 레콘이 될 수도 있지. 물론 보통 레 콘보다 훨씬 큰 레콘이 될 수도 있어.”
지멘은 경악했다.
여자의 말대로였다.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용이라면 당연히 선민 종족이 될 수도 있다. 여자는 과거를 회상하듯 말했다.
“아스화리탈이 뿌린 포자에서 두 그루의 용화가 발화했어.황 제가 그중 하나를 원했지. 황제는 물론 용인이 될 정도로 바보는 아니야. 그녀는 그것을 자기를 도울 존재로 키워낼 거라고 닐렀 어. 나는 두 번째 아스화리탈 같은 것을 원하는 거라면 주지 않 을 거라고 대답했다. 아스화리탈 같은 힘은 불행을 부르지. 사람 이 키워 냈기에 아스화리탈은 무엇보다 무서운 용이 되었어. 두 번 다시 그런 것이 이 하늘을 날아서는 안 돼. 하지만 황제는 아 무도 용이라는 것을 알 수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어.”
아무도 그것이 용이라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용을 선민 종족의 모습으로 키워낸다면. 그것도 놀라운 발언이었지만 지멘 은 다른 종류의 충격도 느꼈다. 황제를 이렇듯 평이하게 부르는 나가 여자는 누구인가? 지멘은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나가를 바라 보았다.
“너는 누구지?”
여자는 과거의 깊은 울림으로 말했다.
“나는 쉬크톨을 버린 암살자며 왕위를 버린 왕이다. 내 본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으니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사모 페이라고 불러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