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9장] – 불씨의 비행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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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9장] – 불씨의 비행 7


손끝에 전해 오는 묵직한 감각에 론솔피는 자신이 지멘의 머리 를 쪼갠 줄 알았다. 그래서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그를 바라보고 있는 지멘의 모습은 론솔피를 놀라게 했다. 론솔피는 자신의 도 끼창을 바라보았다. 도끼창의 회전이 가장 적은 부분, 그의 손 바로 윗부분의 창대가 무엇인가에 걸려 있었다.

그것은 삼각 철봉이었다. 론솔피는 당황하여 쵸지를 바라보았다.

“쵸지? 뭐하는 거야?”

쵸지는 철봉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죽이지 마.”

“뭐? 생포하자는 거야?”

“죽여 버리면 준람이 어떻게 이야기를 하나.”

“이야기? 준람?”

“준람이 지멘에게 이야기할 것이 있는 것 같군. 그래서 억지로 싸움을 끊었잖아.”

론솔피는 망연한 눈으로 다시 지멘을 바라보았다. 물론 지멘은 그곳에 없었다. 론솔피는 벼슬을 빳빳하게 세우며 주위를 둘러보 았다. 지멘은 꽤 떨어진 곳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당 장 머리를 부술 수 없는 거리였다. 론솔피는 욕설을 씹으며 준람 을 찾았다.

준람은 허리를 쥔 채 쵸지에게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 말을 하고 싶었지만 다리의 고통이 만만찮았다. 뼈가 상한 것이 분명했 다. 레콘이 아닌 생물이라면 절명했을 충격이다. 준람은 조금 후 에야 겨우 부리를 열 수 있었다.

“지멘.”

지멘은 한 손으로 허리를 누른 채 비스듬하게 서 있었다. 치열 한 격투 때문에 사방엔 검고 흰 깃털이 가득 뿌려져 있었다. 불 어온 바람이 그것들을 붙잡아 날려 올렸다. 춤추는 깃털 때문에 지멘의 모습이 흐려지자 준람은 다급한 마음에 한 발 내디뎠다. 그러자 다리의 통증이 다시 그를 강타했다. 준람은 걷는 것을 포 기하고 말했다.

“지멘, 왜 약해졌나?”

지멘이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많이 약해졌나?”

“그래.”

“자네는 많이 강해졌더군.”

“응. 자네를 죽이려고 연습을 많이 했어.”

지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추측대로였다.

“고라이 때문인가?”

“억지로 뺏어 가서 버리는 것은 뭔가.”

“미안해.”

“고라이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자네가 사과했는데 고라이가 내게 들려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면. 고라이에게 사과했나?”

“그런 기억이 없군.”

“변명할 텐가?”

“아니.”

떠올랐던 깃털들이 빙글빙글 돌며 내려앉았다. 준람은 부리에 닿는 깃털을 훅 불었다.

“그런데 왜 약해졌나?”

“죽이고 싶지 않아.”

준람은 노기를 느꼈다.

“그래. 싸우기는 하는데 죽이기는 안 하더군. 나를 동정하나? 그렇지 않으면 고라이가 또 남편을 잃게 할 수는 없다는 건가? 그렇게 나를 또 모욕하는 건가?”

“미안해.”

“그 소리 그만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 6년 동안 방해되는 것은 뭐든 때려죽이고 불지르면서 돌아다녔다고 들었 어. 내가 잘못 들었나? 발란카에 들어오는 풍문이 모두 헛소문이 었나?”

“그렇지 않아. 자네가 들은 나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맞을 거야.”

“그런데 왜! 왜 나는 죽이고 싶지 않다는 건가!”

“자네라서 그런 것은 아니야.”

“뭐? 그럼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는 건가? 하지만 즈라더는! 자 네가 죽이고 그 도끼를 납병하지 않았나!”

“그랬지.”

준람은 하마터면 다리를 구를 뻔했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다리 의 부상을 떠올린 준람은 대신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바보가 된 건가! 답답하게 굴지 말고 제대로 이 야기를 좀 해 봐!”

지멘은 어쩌면 준람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준람, 자네가 살아 있어서 이렇게 싸울 수도 있고 옛이야기를 할 수도 있잖나?”

“무슨 소리인가, 도대체!”

가까스로 끌어낸 용기가 싹 사라졌다. 지멘은 다시 혼란스러워 졌다.

“모르겠어, 준람. 그래. 나는 모르겠어. 그냥 이렇게 말하겠 어. 저기 있는 레콘들과 절벽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말이야. 따라오지 마.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아.”

아실도 죽이고 싶지 않아. 지멘의 부리 끝에 걸린 말이었다. 지멘은 그 말을 도로 삼켰다.

“나는 남쪽으로 가야 해. 따라오지 마. 내 모든 숙원이 끝난 다음 발란카로 자네를 찾아가지. 기다려 주게.”

“안 되겠군, 지멘.”

“따라오지 마.”

“자넬 잡겠어.”

가라앉던 깃털들이 사방으로 튀어올랐다.

지멘의 급격한 움직임이 일으킨 바람이 깃털들을 소용돌이치 게 했다. 지멘은 그들을 내버려둔 채 호라이체 방향으로 내달렸 다. 론솔피는 성난 소리를 내며 그 뒤를 쫓았다. 하지만 쵸지는 삼각 철봉을 다시 허리에 차고 준람에게 걸어갔다. 준람은 쵸지 의 내민 손을 보고는 쌍창을 한 손에 몰아쥐고 쵸지의 팔에 몸을 기댔다. 쵸지가 말했다.

“다리 좀 어때?”

“아파.”

“역시 힘이 좋은가 보군.”

“그래. 약해진 건 마음 쪽인 것 같아.”

“별일 다 봤군. 누굴 죽이겠다는 숙원을 세운 레콘은 그렇지 않은데. 그리고 그 애는 어디 있지?”

“그 애?”

“인간 여자 애 하나 배낭에 넣어 다닌다고 했잖아. 하지만 배 낭에는 그런 것이 안 보이더군.”

“그래. 그러고 보니 보이지 않는군.”

멀리서 딱정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쵸지는 절벽 쪽을 보았다. 두 마리의 딱정벌레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는 지멘 이 뛰어간 방향으로 날아갔고 다른 한 마리는 그들을 향해 날아 왔다. 그리고 주테카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모습도 보였다. 쵸지는 준람의 다리를 살피기 위해 용재 숙박소 쪽으로 걸었다. 

“죽이고 싶지 않다니, 시시하군. 각오하고 온 사람 허탈해지는 데.”

“죽고 싶어서 왔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쵸지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커다란 벼슬이 출렁였다.

“바보처럼 웃고 싶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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