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1장] – 분쟁을 음미하는 태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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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1장] – 분쟁을 음미하는 태도 1


바둑판은 차려졌고 사어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산공부차사 파라말 아이솔은 아무 말이든 시험 삼아 해 보라는 뱀부리미의 요청에 따라 말했다.

“바둑에 사용되는 돌은 두 가지죠. 흰 돌과 검은 돌.”

뱀부리미는 파라말의 말을 사어로 바꿔 미라그라쥬 로 보냈다. 조금 후 뱀들은 미라그라쥬에서 온 아르키 스 대수호자의 대답을 몸으로 표현했다. 뱀부리미는 그것을 읽었다.

“아니요. 바둑에 사용되는 돌은 361개입니다. 패싸 움이 많다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파라말은 그 말에 대해 생각하느라 대국이 시작된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미라그라쥬에 있던 아르 키스 대수호자는 상대방이 첫수부터 장고를 하는 것 인가 의심했다.

-어느 해, 비스그라쥬에 있던 아라짓 제국의 산공부차사 파라말 아이솔과 미라그라쥬에 있던 도시 연합의 대수호 자 아르키스 사이에 있었던 대국에서


분쟁을 음미하는 태도

근심 섞인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다미갈 카루스 부위는 짧 은 외침을 듣고 아래쪽을 보았다. 그의 상관이 손짓을 보내고 있 었다. 카루스 부위는 걷어올렸던 줄사다리를 내렸다. 니어엘 헨 로 수교위는 날렵하게 줄사다리를 붙잡고 올라왔고 카루스 부위 가 수교위의 손을 붙잡아 망루 위로 끌어올렸다.

“아래에서도 잘 보이실 텐데 어쩐 일로 올라오셨습니까?”

니어엘 헨로 수교위는 줄사다리를 오르느라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하며 말했다.

“물론 귀관을 보기 위해서.”

“말씀하십시오.”

“애들 분위기가 수상하다. 설명해.”

카루스는 자기 선에서 해결하려 했던 일이 어느새 중대장의 귀 에까지 들어갔다는 사실에 난감했다. 수교위가 이렇듯 찾아왔으 니 사실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3소대 2분대장 릭 몰테이 아십니까?”

“입이 가볍지.”

“정확하십니다. 바로 그 입이 문제입니다. 어제 석식 시간에 발케네 것들은 빠지라는 식으로 큰소리로 떠들었나 봅니다. 그런 데 석식을 마치고 나가던 3소대 1분대장 소람 퍼기스가 그것을 들었습니다. 소람 퍼기스는 발케네 출신이고, 지난번 중대 체육대회의 비각술 우승자입니다.”

니어엘은 끙 하는 소리를 냈다.

“그 가벼운 입에 무거운 혹을 달아 줬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다행히 릭 몰테이가 재빨리 몸을 피했습니다. 퍼기스도 처음 에는 그 사건을 확대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몰테 이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 가시를 세운 모양입니다. 그러니 퍼기 스도 체면이 깎이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몰테이를 손봐 줘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대치 상태입니다. 몰테이 쪽 녀석들 이 많긴 하지만 거긴 잔챙이들이 좀 섞여 있습니다. 반면 퍼기스 주변에 있는 녀석들은 진짜배기들이지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3소 대장 가리아 릿폴입니다.”

“뭐가 문제지?”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녀를 타이르면서도 소대 운용 에 간섭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방법은 없나 고민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았나?”

“릿폴 부위는 군단 문화에 익숙하지요. 독립 중대에서는 부위도 마냥 놀 수 없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시기가 괜 찮다면 그 점을 천천히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니어엘 헨로는 카루스 부위가 왜 말끝을 흐리는지 잘 알 수 있 었다. 카루스가 바라보던 하늘에 그 대답이 떠 있었다. 니어엘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광활한 하늘의 주인인 태양이 오늘처럼 볼품없어 보인 적도 드물다. 태양은 하늘누리의 거대한 지느러미 끝에 끼인 조그마한 가락지처럼 보였다.

며칠 전 홀연히 나타난 제국 수도는 나나본의 상공에서 그 거 체를 멈췄다. 그 시각 나나본에서 일어났던 소동을 니어엘은 되 새기기도 싫었다. 무스키 드레 태수는 침착한 인물이었고 자신이 하늘누리가 출동해서라도 교정해야 할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다 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태수의 침착한 태도를 궁지에 몰린 사람의 자포자기로 해석했다. 태수관에 파견 나가 있던 부하로부터 사람들이 태수를 붙잡아 사형(私刑)하려 한다는 첩보를 접했을 때 니어엘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가까스로 제 시각에 도달하여 태수를 구출한 니어엘은 소동을 일으킨 나나 본 사람들을 몹시 꾸짖었다. 드레 태수는 아무 잘못이 없으며, 만에 하나 그에게 부덕한 면이 있다면 하늘누리 대신 사자패주가 오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는 말로 니어엘은 사람들을 납득시켰다. 사람들은 부끄러워하며 돌아갔고 드레 태수는 화를 내지 않았다. “누군들 저 광경을 보고 침착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사람들 은 규리하에서 일어난 일을 좀 지나치게 전해 들었습니다. 이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도 고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주동자들을 엄중히 벌하십시 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태수님, 보십시오. 머리 위에 제국 수도가 떠 있습니다. 폐하 께서 내려다보시는 이 땅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이 태수님의 의무입니다.”

무스키 드레 태수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니어엘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몇몇 극렬 분자가 태수관으로 끌려와 태수 모독에 대 한 대가를 치렀다. 머리 위에 제국 수도가 떠 있는데도 엄격한 신상필벌을 행하는 태수를 보자 사람들은 태수에게 잘못이 없다 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나고 밤 동안 머리 를 식힌 후에는 하늘누리의 모습이 태수의 위엄을 돋보이게 한다 고 느낄 정도가 되었다. 자신의 피지배자들에게 구타당할 뻔했던 무스키 드레 태수는 불과 하루 만에 완전히 뒤바뀐 사람들의 태도, 즉 공포에 가까운 경애를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에 씁쓸한 미 소를 지었다.

하지만 하늘누리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에 평화는 없다. 공교롭 게도 그 시각 니어엘의 중대는 하늘누리의 그림자 아래에 있었 다. 몇 시간만 지나면 움직일 그림자가 니어엘을 심란하게 하고 있었다. 중대를 뒤덮은 하늘누리의 그림자는 중대에 만연한 불안 한 기류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불행하게도 중 대원들의 판단은 나나본 사람들의 성급한 판단보다 훨씬 사실에 가까웠다. 전쟁, 발케네와의, 충격적인.

가리아 릿폴 부위는 그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 다. 전쟁이 발발한다면 부위는 부위답게 돌격해야 한다. 가리아 릿폴은 이미 삶에 대한 애착을 의식 밖으로 쫓아내는 단계로 접 어들었을 것이다. 그런 자기 조정에 들어간 부위에게 소대 관리 에 힘쓰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혼란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카루 스의 고민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니어엘 헨로의 고민이기도 하다.

니어엘 헨로 수교위는 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아직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는 자신의 중대가 전쟁에 투입될지 그러지 않을지를 예측할 수 없었다. 발케네의 접 경 지대에 주둔하고 있는 그녀의 중대는 발케네 국경 수비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국경 돌파에 그녀의 중대가 기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다르게 살펴보면 나나본의 지역민들과 친 숙한 그녀의 중대는 효과적으로 나나본 수비를 담당할 수 있다. 배후 수비를 위한 효과적인 병력이라는 것이다.

전쟁 상황에 대비한 임무가 규정되어 있다면 니어엘은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도시 연합과 마주하고 있는 남부의 제국군 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규정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들은 전쟁 발발시 최우선 목표와 우선 목표, 그리고 차선 목표까 지도 상세히 기록된 지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중대는 시련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국군은 제국 내 영주와의 전쟁을 상정한 작전 계획을 명문화해 둘 수 없었다. 귀족원으로 부터의 격분에 찬 항의를 감당할 수 있다면 또 모르지만, 중대 지휘관으로서 니어엘 헨로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나나본 태수와 협조하여 국경 지대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다. 절대로 발케네 공격의 최선봉 부대가 아니다.

하지만 발케네 출신자들과 함께 전쟁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식 으로 떠들어 대는 릭 몰테이 같은 자를 보면 알 수 있듯 중대의 의무에 모종의 변경이 가해질 거라 예측하고 있는 중대원들은 많 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군인들은 전쟁이 직업 이고 돈벌이다. 가장 강력한 승진 기회이기도 하다. 어차피 살해 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돈을 받는다면 이왕이면 보수가 더 두둑한 곳에서 곡예를 피우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이런 생각, 저런 추측, 그런 망발 따위를 하고 있는 중대원들을 안정시키려면 니어엘 헨로는 중대의 전망에 대한 명확한 태도 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니어엘은 아직 상부로부터 아무 런 지시를 받지 못했다. 그녀의 임무에 변화가 생겼다는 통보도, 현재의 임무를 계속 유지하라는 통보도 없었다. 하늘누리는 그 저 나타나서 고요히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을 비좁게 만드 는 그 존재를 무시하는 것은 시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불가능 하다.

니어엘은 답답한 기분에서 말했다.

“몰테이와 릿폴은 이미 전쟁 준비 중이군. 자네는 전쟁에 나가고 싶나?”

카루스는 조금 뜸을 들이고서 말했다.

“출전하지 마십시오.”

니어엘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엉뚱한 대답을 하는 부하 장교를 바라보았다. 카루스가 말했다.

“수교위님의 동생이 저곳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 다. 동기를 의심받을 테니 공을 세울 수 있는 자리에는 가지도 못할 겁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보답 대신 의심이나 실컷 얻 을 겁니다. 그러면 중대원들은 그들대로 불만을 느낄 테고 사기 가 말도 아니게 될 겁니다. 최악의 경우 수교위님은 진짜 유혹을 느끼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상관의 군기를 의심하다니, 괘씸하군.’

카루스는 싱긋 웃었다.

“무슨 말이든 다 받아 주시는 상관을 모시고 있는 행운을 즐길따름입니다.”

“관용에도 한계가 있다. 군인에게 싸우지 말라는 말은 너무하을 안정시키려면 니어엘 헨로는 중대의 전망에 대한 명확한 태도 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니어엘은 아직 상부로부터 아무 런 지시를 받지 못했다. 그녀의 임무에 변화가 생겼다는 통보도, 현재의 임무를 계속 유지하라는 통보도 없었다. 하늘누리는 그 저 나타나서 고요히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을 비좁게 만드 는 그 존재를 무시하는 것은 시각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불가능 하다.

니어엘은 답답한 기분에서 말했다.

“몰테이와 릿폴은 이미 전쟁 준비 중이군. 자네는 전쟁에 나가고 싶나?”

카루스는 조금 뜸을 들이고서 말했다.

“출전하지 마십시오.”

니어엘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엉뚱한 대답을 하는 부하 장교를 바라보았다. 카루스가 말했다.

“수교위님의 동생이 저곳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 다. 동기를 의심받을 테니 공을 세울 수 있는 자리에는 가지도 못할 겁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보답 대신 의심이나 실컷 얻 을 겁니다. 그러면 중대원들은 그들대로 불만을 느낄 테고 사기 가 말도 아니게 될 겁니다. 최악의 경우 수교위님은 진짜 유혹을 느끼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상관의 군기를 의심하다니, 괘씸하군.’

카루스는 싱긋 웃었다.

“무슨 말이든 다 받아 주시는 상관을 모시고 있는 행운을 즐길따름입니다.”

“관용에도 한계가 있다. 군인에게 싸우지 말라는 말은 너무하지 않아?”

“훌륭한 군인이라면 명령을 들을 귀와 그것을 실행에 옮길 손 만 있으면 됩니다. 훌륭한 군인의 귀와 손 사이에는 나가들처럼 심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군인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 니다. 아마도 그런 군인은 전부 남부에 가 있나 봅니다.”

“군인도 사람이라는 건가?”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싸울 이유가 없 습니다.”

니어엘은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20년 근속 휘장을 가지고 있 는 부위의 입에서 사람이기 때문에 싸운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예상키 어려운 일이었다. 문득 니어엘은 카루스 부위에게 극히 받기 어려운 선물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니어엘은 몸을 옆으로 조금 돌렸다. 지평선 가까이 까마득히 먼 곳에 발케네의 땅이 조금 보였다. 땅과 하늘 사이에 끼여 있 는 흐릿한 선을 바라보며 니어엘은 말했다.

“카루스 부위, 그것은 자네나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나나본 수비에 우리 중대보다 적합한 부대는 없습니다. 진격 에 앞서 배후를 살피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뭘 살핀다고?”

“예?”

“카루스 부위, 하늘누리의 배후엔 아무것도 없다. 허공뿐이야.”

카루스는 입을 다물었다. 니어엘은 망루의 난간을 움켜쥔 채 물끄러미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영내를 이리저리 오가는 병사들의 모습이 분주하다. 이 차가운 북부에서 봄은 달력상에만 존재하는 것이지만 병사들의 움직임에서는 겨울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니어엘은 몸을 돌렸다. 부위를 똑바로 향한 수교위는 손을 들어 부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뜻밖의 행동에 카루스는 주춤했다. 니어엘은 빙긋 웃었다.

“고마워. 하지만 나는 이 중대의 모든 얼간이들처럼 폐하의 병사다.”

“그렇습니까?”

“그렇다.”

니어엘은 망루 가장자리로 성큼 걸어갔다. 줄사다리를 잡고 내 려가던 그녀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폴 부위는 내가 만나 보겠다. 자네는 상관 걱정 그만하고 다른 소대장들 단속이나 해 줘. 군인은 내일 전투가 벌어질 것처 럼 먹고 백 년 동안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자야 한다. 그 렇게 해.”

니어엘의 모습이 줄사다리를 따라 아래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카루스 부위는 난간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상념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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