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7장] – 삶을 이용하는 태도 4
석양이 계곡과 산등성이를 불살랐다.
산비탈을 돌 때마다 만나는 태양은 그때마다 점점 붉게 변하고 있었다. 성급한 별 몇 개는 벌써 반짝이고 있다. 바람은 밤의 냄새를 나르기 시작했고 먼 데서 이름 모를 짐승이 우는 소리도 들려온다.
작은 계곡 옆을 걸어가는 지멘의 허리에는 꿩 외에도 새 두어 마리가 더 매달려 있었다. 배부르게 먹을 양은 아니지만 허기를 달래기엔 충분해 보였다. 지멘은 불을 피울 만한 적당한 자리를 찾고 있었다. 조건이 그것뿐이라면 오래전에 좋은 장소를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실은 높은 곳을 원했다. 그녀는 이 근방 어딘 가에 있을 요새의 머리 부분이라도 볼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꽤 높은 산봉우리를 몇 개 지나쳤는데도 시야에 들 어오는 것이 없었다. 물론 지형이 지나치게 복잡해서 높은 곳에 서도 시야가 닿지 않는 부분은 많았다. 해가 지는 것을 본 아실 은 수색을 포기했다.
“그냥 적당히 앉도록 하죠, 지멘. 지금은 찾기 어렵겠어요. 요 새에서 불을 피우면 더 잘 보일 테니까 밤에 찾아봐요.”
지멘은 그 말을 받아들여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물이 흐르는 계곡 바닥에서 훨씬 떨어져 우묵하게 팬 장소를 찾아낸 지멘은 배낭을 내려놓고 걸어오면서 꺾어 두었던 나뭇가지들을 바닥에 쏟았다. 배낭에서 빠져나온 아실은 나뭇가지들을 쌓아 불을 피울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지멘은 새의 깃털들을 대충 뽑아 내었다. 아실이 말했다.
“그렇다면 결국 요새는 있었던 거예요.”
불을 지피는 데 집중하고 있었고, 또 지멘이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아실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만약 고개를 들어 지멘을 보았 다면 아실은 조금 놀랐을 것이다. 손으로는 새를 손질하고 있었지만 지멘은 아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 내용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지멘은 자신이 왜 아실이 말하는 것에 이토록 주의를 기울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돼요. 암살공은 이 땅에 요새를 만 들 필요가 없어요. 콜록! 어유, 매워. 비밀 요새? 음. 아까 그 자작이 보여 준 태도로 봐서 비밀 요새는 아닐 거예요. 아무래도 그 요새를 꼭 확인해야겠어요. 저녁 먹고 나서 눈 좀 붙인 다음 찾아보도록 해요.”
지멘이 중얼거렸다.
“이 아이는 암살공이 장차 레콘 독립국의 건설에 도움을 줄 거 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질문은 지멘이 아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증거였 다. 하지만 아실은 그것을 대수롭잖게 넘겼다. 자신의 생각으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예. 황제가 죽으면 제국 북부는 틀림없이 암살공의 놀이터가 될 거예요. 그리고 귀족원에서 암살공의 발언권은 상당히 높아 요. 도움이든 방해든 암살공은 우리 사업에 영향을 크게 줄 수 있어요.”
우리 사업? 지멘은 그 말에서 약간 켕기는 기분을 느꼈다. 그 의 숙원은 황제 살해이고 독립국 건설은 아실의 목표다. 하지만 아실은 지멘 또한 그 일에 합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 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후 지멘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제가 죽은 후에도, 즉 그들 두 사람이 6년 동안 함께 추구해 왔던 일을 달성한 후에도 지멘은 아실의 곁을 떠날 수 없다. 지멘과 아실은 철의 대화로 얽혀 있다. 아실이 선제 공격을 하지 않는 한 지멘은 그것을 기다리며 계속 아실 곁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아실의 사업은 곧 지멘의 사업이 될 것이다.
아실은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철의 대화를 유도한 것일까? 지멘은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지멘은 그 사실이 반가웠다.
지멘은 황제를 죽인 후 곧 아실을 죽이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를 죽인 후에도 아실이 철의 대화를 끝내지 않을 것 임을 알게 되었다. 아실은 황제를 죽이고 레콘 독립국을 건설하 여 타이모의 유지를 완성한 후에야 철의 대화를 종료할 것이다. 나라를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멘이 아실 을 죽이는 날은 빠른 시일 내에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 애에게 말을 걸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겠지만, 이 애를 긴 시간 동안 도울 수는 있겠군.’
아실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니까 암살공이 이상한 짓을 하면 그게 무슨 이상한 짓인 지 알아둬야 해요. 게다가 요새라는 건 전쟁 외에는 쓸모가 없어 요. 요새 건설은 곧 전쟁 준비지요. 하지만 암살공이 전쟁을 벌 일 수 있는 땅은 규리하를 제외하면 제국령뿐이에요. 암살공이 설마 제국을 상대로……?”
아실은 말끝을 흐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땅이 흔들리네요?”
지멘은 눈을 끔뻑였다. 아실의 말이 맞았다. 땅이 미세하게 흔 들리고 있었다. 아실이 다시 말했다.
“지진인가?”
하지만 지진과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지진보다 훨씬 미약한 대신 지속적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다가오고 있었다. 지진은 다 가오거나 하지 않는다. 아실은 갑자기 불을 내려다보았다. 거기 서는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실은 한 가지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연기를 보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 다. 그것은 땅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 아실은 벌떡 일어났다.
“배낭에 태워 줘요! 산꼭대기로 올라가요!”
지멘은 손질하던 새들을 내버려둔 채 아실의 말을 따랐다. 그 들은 가장 가까운 산꼭대기로 단숨에 뛰어올라 갔다. 정상에 선 지멘과 아실은 그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스러지는 햇빛은 미약했지만 지멘과 아실은 똑똑히 볼 수 있었 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신들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아실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도망쳐요, 지멘!”
지멘은 온몸의 깃털을 부풀렸다. 하지만 아실의 외침이 합리적 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주저 없이 몸을 돌 려 산꼭대기에서 뛰어올랐다.
내리막을 향해 뛰었기 때문에 지멘이 발을 다시 땅에 디딘 것 은 허공을 백 미터쯤 난 뒤의 일이었다. 착지의 충격은 아실의 폐를 터뜨릴 것 같았다. 아실은 숨이 막혔다. 동시에 그녀의 머 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아실은 신음처럼 말했다.
“요새가 아니었어.”
가문비나무 숲을 질풍처럼 달려가면서 지멘은 다시 아실의 말 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자신이 앞으로 아실의 말을 결코 놓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왜 그럴까? 아실은 더듬거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요새가…… 아니었어!”
요새가 아니다. 아실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요새가 아 니다. 암살공이 원한 것은 요새를 짓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었다. 여러 대의 우마차에 필적하는 운반력, 육중한 돌을 자유로이 쌓 아 올리는 견인력, 방해가 되는 지형을 간단히 평탄화할 수 있는 파괴력, 그러니까 힘. 요새를 지을 수 있는 거대한 힘. 아실은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동시에 익숙함도 느꼈다. 아 직 의식의 겉면까지 배어 나오지 않았지만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는 얼어 있던 기억이 녹아 흐르고 있었다. 아실은 그와 비슷한 모습을 6년 전에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더없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광경이었지만 지금은 오줌을 지릴 만큼 무서운 광경이다. 거대한 산봉우리들을 낮은 울타리처럼 뛰어넘으며 수천 명의 레콘들이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