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2권 : 제국의 대장군 [9장] – 불씨의 비행 5
러크와 호라이체를 잇는 용재는 시구리아트 산맥 북부에서 산 맥을 넘는 도로로 오랫동안 애용되었다. 용재는 유명한 길이면서 유료도로당의 소유가 아닌 것으로도 유명한데 유료도로당이 개척 하기 전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상존 했던 길이라도 유료도로당이 더 완벽하게 정비하여 소유하는 경 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용재의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땅을 파헤치며 이동하는 어떤 용이 산맥을 넘으며 남겨 놓은 길 이라는 전설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용재는 고지대에 있는 길 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평탄했다. 그래서 유료도로당은 이곳 에서 통과료를 받는 것을 포기하고 숙박업만 했다.
가벼운 차림의 신체 튼튼한 여행객이라면 일박 없이 용재를 넘 을 수 있다. 따라서 용재 숙박소의 고객은 주로 노약자들이 포함 된 여행자들이나 짐이 많아서 사역 동물들을 놀릴 필요가 있는 여행자들이었다. 그리고 후자에는 자유무역당의 상단이나 운송단 또한 포함된다. 자유무역당원들은 가끔 자신들을 약올리기 위해 유료도로당이 이곳에 숙박소를 건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에 시달리곤 했다. ‘우리가 공짜로 길 이용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는 거지 피해망상이라 할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 니기 때문에 용재 숙박소에서는 여행객들이 용재 아무 데서나 야 영을 하든 말든 참견하지 않는다. 하지만 풍부한 물과 음식, 좋 은 잠자리, 상품의 안전을 한꺼번에 보장받을 수 있는 숙박소를 외면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일이다. 다른 숙박소를 세우는 것도 자유무역당으로서는 고려해 볼 만한 일이겠지만 지리적 조건은 그런 행동을 제한한다. 용재는 평탄하지만 좋은 물이 있는 곳은 드물다. 그리고 가장 좋은 물이 있는 곳에는 이미 유료도로당의 숙박소가 있다. 자유무역당원들은 새 숙박소 건설을 강행할 경우 소요되는 건설비와 유지 경비를 계산해 보았고, 그들의 제일 신 념인 이문의 법칙에 따라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용재 숙박소의 문 을 두드렸다.
하지만 으르렁거리며 숙박소를 들어서는 자유무역당원들의 모 습을 보며 유료도로당원들이 비도덕적인 즐거움을 느낄지도 모른 다는 그들의 의혹이 완전히 사실과 무관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 다. 자유무역당은 오래전부터 좋은 값을 지불하고 숙박소를 사겠 다고, 그것이 어렵다면 임차라도 하겠다고 줄기차게 제안했지만 유료도로당은 그 제안을 거부해 왔다. 그 거부의 이면에는 자유 무역당의 철학에 대한 유료도로당의 거부감이 존재할 것이다. 자 유무역당은 최저의 경비로 이루어지는 물산의 흐름만이 보다 많 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반면 유료도로당은 왕래와 전파가 소중한 개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 또한 대 가를 지불해야 하는 행위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용재숙 박소의 소장인 리존 보와 자유무역당 제22상단장인 사이케라호미스의 대화는 두 단체의 이념적 대치를 잘 드러내는 것이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무분별한 전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아나? 그것은 결국 천박한 것들에게 주어지지 않아야 할 전파력 을 부여하게 된다네, 사이케라.”
“리존, 귀 단체에서는 천박한 것과 고귀한 것 모두에게 똑같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가. 귀 단체가 고귀한 것의 전파력 또한 소 모시킴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듣 게 되어 만족스럽군.”
“멈추게! 나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았네, 사이케라. 내 말을 공박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그릇된 언행부터 보살피도록 하게. 자네는 은연중에 천박한 것과 고귀한 것에 똑같은 전파력이 있음을 전제했어. 그렇다면 귀 단체가 둘을 구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아도 되겠군?”
“천만에. 그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언제나 대중의 권한이고 우리는 대중의 기호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단체일 세. 우리는 그 두 가지를 언제든 구분할 수 있어. 그리고 내 전 제는 잘못되지 않았어. 천박한 것과 고귀한 것은 똑같은 전파력 을 가지고 있지.”
리존 보는 콧방귀를 뀌었다.
“악행이 선행과 똑같이 권장된다는 건가? 내가 들어 본 가장 엉터리 같은 소리군.”
숙박소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이케라 호미스는 잽싸게 말했다.
“자네는 전파력과 우선 순위를 혼동하고 있어. 선행이 권장되 고 악행이 경계되는 것은 당연해. 그 당연하다는 점에 주목하게. 선행의 전파력이 더 높다면 권장할 필요가 있겠나? 권장하지 않아도 자연히 선행만 전파되어 모든 인류가 선행의 길을 걷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아. 자네처럼 어린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 나이쯤 되면 ………….”
“그 점에 이의 있네. 내가 자네보다 연상일걸.”
“허튼소리!”
두 사람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서로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숙박소의 3층 휴게실에서 일어난 숙박소장 과 상단장의 불꽃 튀는 토론에 아무도 근심 어린 눈빛을 보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휴게실 여기저기에 흩어져 바둑을 두거나 담소를 나누던 숙박소 직원들과 상단 단원들은 한심함과 즐거움 을 동시에 느끼며 두 늙은이를 바라보았고 이것이 적대적인 두 단체의 유혈 분쟁으로 비화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품지 않았 다. 하지만 두 늙은이는 부하들이 보내는 시선을 무언의 응원으 로 오해했다. 자네는 너로 바뀌었고 너는 곧 놈이 되었다.
“야, 이 멍청한 놈아! 도대체 뭐하고 살았냐? 그 나이 먹도록 뭘 얻으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배우지 못했냐? 모든 것에는 대가를 지불해야 해! 모래 한 알도 공짜가 아니야. 네가 모래 한 알을 주우면 그만큼의 시간을 지불하게 되는 거라고, 그 시간에 하지 못한 일이 모래 한 알의 대가야!”
“이 넋빠진 놈아! 그래서 모래 한 알과 바위 한 덩어리를 똑같 이 취급하냐? 모래나 바위나 똑같으니까 네 머리 위에 바위를 던 지겠다고 말하면 그러라고 할 테냐?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살인자에게도, 아픈 사람을 구하러 달려가는 의사에게도 똑같은 통행료 받는 네놈들 짓거리가 바로 그런 것 아니냐. 정신 똑바로 박힌 놈이라면 의사한테는 돈 안 받을 거다. 이 얼빠진 멍청아!”
“네놈들이 사람 구하려고 싸돌아다니냐! 돈 긁어모으려고 그러지!”
“미친 놈. 우리가 돈을 긁어모은다고? 우리는 돈을 흐르게 하 는 거다. 돈이 한곳에 쌓여 있으면 곧 독이 되지.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세상을 구하는 의사인 셈이야!”
“허, 요 모자란 녀석, 말 잘했다. 그러면 네놈들이 긁어모은 돈을 통행료로 내놓는 게 바로 네놈들이 원하는 일인 게로구나?”
“그거하고 그거하고 같냐!”
“뭐가 다르냐!”
“너 이 자식, 그때의 그 베짱이 때문에 그러는 거지?”
“다. 닥쳐라!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그때의 개밥그릇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그만해!”
용재 숙박소 직원들과 제22상단 단원들 중에는 ‘베짱이’와 ‘개 밥그릇’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면 일 년 수입을 내 놓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두 단어가 언급되 자마자 고개를 홱 돌린 자들은 전부 그런 자들이었다. 반면 호기 심보다는 견실함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기에, 또는 그런 단어 들은 대개 관련자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알아봐 야 재미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두 단어의 근 원에 별 관심이 없는 자들은 진부함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 중에는 그 격론에 아무런 흥미의 요소가 없다는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내기 위해 바깥을 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비명을 지른 사람은 그런 무리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돌아본 곳에서는 파랗게 질린 숙박소 직원이 바깥을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순간 직원이 가 리킨 방향의 창과 벽이 박살 나며 뭔가 시커멓고 거대한 것이 휴 게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충격으로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숙박소 건물이 요란하게 경련했다.
바둑판과 그릇과 탁자와 의자와 액자 등의 물건들이 사방으로 튀어올라, 나동그라지고 쓰러진 사람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 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조금 전 리존 과 사이케라가 나누었던 대화에서 거론되었던 바위가 현실이 되 지 않았나 하는 것이 그들의 첫 번째 감상이었다. 확실히 투석기 의 공격에 준하는 충격이다. 그러나 가까스로 머리를 내민 사람 들은 좀 이채로운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런 쌍놈의 자식!”
검은 레콘이 벌떡 일어서고 있었다. 검은 레콘은 몸을 확 부풀 려서 탁자 부스러기와 그릇 등을 털어냈다. 틀림없이 ‘그가 몸 을 부풀리자 깃털 사이에서 일품요리가 차려진 십인분 상차림이 튀어나갔다.’는 후일담이 전해질 만한 광경이었다. 허리를 구부 린 검은 레콘은 코끼리를 통구이할 때 쓰는 것이 아닌가 싶은 크 기의 도끼창을 집어 들었다. 그는 똑바로 일어서서 그대로 밖으 로 나가려 하다가 주춤 멈춰 섰다. 그가 뛰어 들어온 곳은 벽과 지붕 일부분에 걸쳐 거대한 파괴가 일어나 있었다. 검은 레콘은 주위를 둘러보았고 처참한 폐허 사이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과 눈 이 마주쳤다. 레콘은 위아래 턱을 탁 부딪치고는 부리를 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예언서 읽어 봤지? 오늘이 그날이야.’라는 말을 들을 거라 예상했다. 그 예상은 빗나갔다. 좀 기묘한 방식으로, “죽은 놈 없지? 좋아. 엘시 에더리에게 달아 놔.”
그리고 검은 레콘은 건물의 찢어진 틈 사이로 날아올랐다. 그 가 발을 구른 덕분에 잔해와 먼지들이 다시 사람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황망함을 견딜 수 없었던 사람들은 할 일이 생겨 기쁘 다는 투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중에서 도무지 비명 같지 않 은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그 소리가 웃음이라고 생각했다. ‘웃어?’ 사람들은 그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서로를 꼭 끌어안 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리존과 사이케라의 모습을 보고는 어 쩐지 수긍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재 숙박소 뒤편에는 꽤 높은 절벽이 있었다. 그 절벽 위에서 이레 달비는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가주…… 주인님, 론솔피가 나오는군요.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엘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용재 숙박소장에게 내 이름으로 서신을 쓰도록 해라. 진심으 로 사과하며 피해를 전부 보상하겠다는 내용으로, 주테카? 용재 숙박소에서 좀 떨어지라고 외쳐 주십시오.”
제비뽑기에서 걸린 탓에 그날 이레와 엘시 곁에 붙어 있기로 한 주테카는 냅다 계명성을 질렀다. 쩌렁쩌렁 울리는 계명성이 용재 숙박소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숙박소에서 떨어져서 싸워!”
주테카의 계명성을 들은 쵸지는 피식 웃으며 외쳤다.
“지멘 들었냐? 이리 와서 나랑 놀자!”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하기 위해 쵸지는 바위를 집어 들었다.
공기놀이보다는 성벽 건설에 훨씬 적합한 크기의 바위가 하늘 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곳에는 준람의 쌍창을 피해 뛰어오른 지 멘이 있었다. 공중에서 몸을 피할 수 없었던 지멘은 어쩔 수 없 이 몸을 웅크렸다. 바위는 지멘의 다리 쪽에 맞았고 그 때문에 거대한 레콘이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도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었 다. 지멘은 어쩔 도리 없이 등부터 떨어졌다. 벌떡 일어나긴 했 지만 지멘은 준람의 쌍창에 호되게 당할 것을 각오했다. 그러나 들려온 것은 준람의 성난 외침이었다.
“바위 집어던지지 마!”
지멘에게 명중한 다음 궤도가 바뀐 바위가 준람에게 날아든 것 이다. 그것을 피하느라 준람은 뒤로 뛰어야 했고 그 틈에 속수무 책의 처지에 빠져 있던 지멘은 다시 똑바로 일어설 수 있었다. 성난 론솔피의 도끼창과 쵸지의 삼각 철봉이 날아들기까지 지멘 은 두 호흡 정도 쉴 수 있었다. 지멘은 주저 없이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곳에는 쌍창을 꼬나쥔 준람이 기다리고 있 었다. 망치를 냅다 집어던지려던 지멘은 생각을 바꿨다. 준람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준람에겐 창 하나가 남게 된다. 론솔피와 쵸지까지 합류한다면 망치를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지멘은 어쩔 수 없이 지금까지 피해 왔던 일에 돌입했 다. 그는 준람과 무기를 겨루기로 했다. 지멘의 결심을 직감한 준람이 벼슬을 꼿꼿하게 세웠다.
두 사람은 정면에서 부딪쳤다. 오래전에 한 번 그러했던 것처럼.
쌍창과 망치는 모두 최근접 격투에 부적합한 병기다. 하지만 준람과 지멘의 무기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멘과 준람은 자신의 두 발과 부리도 싸움에 참가시켰다. 잠깐이라도 주의력을 잃는 쪽이 끔찍한 피해를 입게 되는 싸움임을 확인한 론솔피와 쵸지는 어쩔 수 없이 쇄도를 멈추고 관망에 들어갔다.
망치와 부리, 발, 쌍창이 수십번 얽혔다. 한 번 경험했던 싸 움의 반복이지만 지멘은 여전히 까다롭다고 생각했다. 창의 범위 안쪽으로 뛰어드는 것은 이 경우 의미가 없다. 그 안쪽에 부리와 두 발 외에도 또 다른 창 하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준람도 예전의 당황을 다시 느꼈다.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지멘 은 균형을 잃기 쉬운 망치를 휘두르지 않았다. 지멘은 언제든 휘 둘러 준람의 몸을 부술 수 있는 위치에 망치를 놓아둔 채 주로 발과 부리를 이용해서 싸웠다. 망치는 느린 무기에 속하기 때문 에 지멘은 더 빠른 부리나 발을 쓰는 기술을 꽤 높은 수준으로 익혀 두었다. 날붙이라면 그 부리나 발에 호된 응징을 가할 수 있을 테고 긴 무기라면 발이나 부리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공격 할 수 있겠지만 준람의 병기는 짧은 창 두 자루였다. 지멘은 창 자루에 맞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망치를 휘두를 기회만 엿 보았다. 절벽 위에서 그 광경을 보던 주테카가 감탄하여 말했다. “지멘이 상대를 잘 골랐군. 왕벼슬이나 론솔피의 무기가 상대라면 저 짓은 못할 텐데.”
엘시는 미간을 찡그렸다.
“몸을 빼라고 하십시오. 셋이 한꺼번에 싸울 수 있도록.”
“상대가 빼 줘야 빠지지. 지멘 녀석도 준람을 놔주면 세 명이 한꺼번에 덤빌 것을 아니까 놔주지 않잖아. 지금 이 기회에 준람 을 확실히 박살내 놓자는 결심일걸. 저 봐. 계속 달라붙잖아.”
“준람은 예전에 지멘에게 한 번 졌습니다. 계속 저렇게 두면 위험합니다.”
주테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그건 옛날 일이고. 그동안 많이 늘었나 봐. 아니면 지멘이 좀 약해졌거나.”
지멘 또한 둘 중 어느 것이 사실일지 궁금했다.
오래전 싸웠던 준람이 아니었다. 그때도 쌍창이라는 무기의 특 징 때문에 애먹은 기억은 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는 조 금 더 느린 창이 있었다. 왼쪽이었던가? 지멘은 기억나지 않았 다. 지금 준람의 두 창은 똑같은 속도와 정확성으로 움직이고 있 었고 따라서 그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파악할 수 없었 다. 아내를 지키기 위해 신부 탐색자들과 싸우면서 실력을 연마 한 것일까. 지멘은 준람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게 아니라 나를 잡으려고?”
그 순간 준람이 훌쩍 뛰어올랐다. ‘몸을 빼내려고!’지멘은 지 체 없이 뒤따라 뛰어올랐다. 그런데 준람은 뒤따라 오를 것을 예 상했다는 듯이 차분하게 지멘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약해졌나?”
지멘은 벼슬을 꿈틀했다. 준람은 몸을 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뛰어오른 것이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준람은 빠르게 말했다.
“즈라더를 잡았다고 들었는데, 이상하군. 약해. 나를 죽이기 싫은 것처럼 보이는군.”
준람의 발이 땅에 닿았다. 뒤따라 떨어지면서 지멘은 부리를 내리찍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망치를 휘두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망치를 휘두를 기회인데.
준람은 지멘의 부리를 피하며 창을 내찔렀다. 망치 자루로 그 것을 걷어 올린 지멘은 준람의 다리를 걷어찼다. 준람은 피하지 않았다. 짧게 잡은 다른 창으로 준람은 날아오는 지멘의 허리를 찔렀다. 주테카가 외쳤다.
“떨어졌다!”
지멘에게 걷어차인 준람은 뒤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리고 허 리를 찔린 지멘 또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 순간을 애타게 기 다리던 론솔피가 괴성을 지르며 땅 위를 미끄러졌다. 지멘이 고 개를 돌렸을 때 도끼창의 육중한 날이 하늘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