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2장] – 모르는 것과 미루는 것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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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2장] – 모르는 것과 미루는 것 5


시허릭은 엉겅퀴 여단의 분전에 환호하면서도 초조함을 느꼈 다. 쥘칸의 전술적 판단은 옳았다. 소대 단위, 즉 스무 명의 레 콘들이 발케네 측 레콘 한 명씩을 상대하는 전술은 적의 우익을 확실하게 깨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무자비하게 적진을 가로지르는 레콘 특유의 속도가 나타나지 않았다. 엉겅퀴 여단은 착실하게 적의 우익을 분쇄하고 있었지만 일만이라는 숫자는 엄 청난 것이었고 그 때문에 지금도 돌격한 본대는 빠른 속도로 학 살당하고 있었다. 쥘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활약을 펼쳐 주고 있음은 분명했고, 따라서 책임은 다시 시허릭에게 돌아왔다. 그 는 인간 병사들을 전장에서 빼낼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 허릭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전술, 즉 전열의 병사들이 살해당하는 시간을 이용하여 후열의 병사들의 생존 시간을 버는 방법뿐이었다.

“소화차는 어떻게 됐나!”

“상장군님, 조금 전에 갔습니다. 빨라도 두 시간은 있어야 도 착할 겁니다.”

“두 시간? 젠장! 두 시간은 안 돼. 그러면 저놈들은 아군을 다 죽이고 내키면 장례까지 치러 줄 수도 있어! 그걸 빨리 가져올 방법을 생각해! 갑충사들을 다 불러모아! 수통이라도 던지게 해!”

시허릭의 임시 방편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것이었다. 하늘을 날 고 있던 갑충사들은 사령부로 귀환하여 음료수용 물통을 받아 들 었다. 물통을 든 갑충사들이 다시 레콘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시허릭은 기원했다. 제발 저 불가사의한 레콘들이 물도 무서워하지 않는 괴물은 아니기를.

실현 가능성 있는 소망을 품는 사람은 현명하다.

갑충사들이 물통을 떨어뜨리자 곳곳에서 엄청난 소란이 일어 났다. 시허릭은 혹 퇴각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가슴 설레는 희망을 느꼈다. 하지만 곧 엄청난 좌절을 느꼈다.물에 대한 레콘의 고지식한 반응은 정반대로 도망치는 것인데 위에서 떨어지는 물의 경우 정반대로 피할 수가 없다. 따라서 발케네 측 레콘들은 모든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그 모든 방향 중에는 제국군 본대의 머리 위로 뛰어오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 금까지 광분하는 것은 제국군뿐이었지만 이제는 레콘들도 광분했 고 그 때문에 전선은 끔찍하게 혼란스러워졌다. 그 혼란상에서 제국군을 빼내는 것은 티나한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제기랄, 물 그만 부어!”

“더 쏟을 수도 없습니다.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한 참모가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때 다른 참모가 외쳤다.

“테룸 하장군이 옵니다!”

시허릭은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을 느끼며 전장의 서쪽을 바라보 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기병대가 보이지 않았다. 시허릭은 당황 하여 눈을 돌렸고 조금 후 북동쪽 방향에서 기병대를 발견했다. 파리조군을 관통한 기병대는 파리조군을 내버려둔 채 발케네 측 레콘의 뒤쪽에 집결하고 있었다. 그들이 돌격 태세를 갖추고 있 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시허릭은 그것에 찬성할 수 없었다.

“제기랄! 암살공에게는 아직 소환군이 있다! 소환군에게 뒤쪽 을 보이게 된단 말이야! 암살공이 예비대를 돌진시키면 끝장이 야! 갑충사, 당장 날아가서…….”

“소환군은 못 올 것 같습니다.”

참모의 말에 시허릭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왜냐는 눈으로 바라 보는 시허릭에게 참모는 손을 들어 전장의 서쪽 산지를 가리켰 다. 남서쪽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야산들의 분수령에서는 제 국군 천여 명이 숨가쁘게 달리고 있었다. 시허릭이 외쳤다. 

“헨로 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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