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2장] – 모르는 것과 미루는 것 6
쥘칸 장군의 엉겅퀴 여단이 전장 한가운데로 돌진했기에 니어 엘은 더 이상 그들의 진격로를 보호할 필요가 없었다. 독립 중대 의 지휘관답게 니어엘은 냉철하게 전황을 파악한 다음 스스로 전술을 구사하기로 했다. 그녀의 한 차례 명령이 떨어지자 두 개로 양분되었던 헨로 중대는 빠르게 합류했다. 니어엘은 그들을 곧장 분수령을 따라 달리게 했다.
대대 단위에게는 좀 벅찬 지형인 분수령이 헨로 중대 같은 규 모의 병력에게는 안성맞춤의 이동로였다. 분수령은 좁지만 대신 산지에서의 평균적인 이동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분수령을 따라 움직일 경우 평지의 사람들이 보면 놀랄 정 도의 이동이 가능하다. 물론 산 아래로 다시 내려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소모되니 보통의 경우 분수령은 매력 없는 이동로 다. 하지만 니어엘은 산 아래로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전장 북 서쪽 가까이에 도달한 니어엘은 산사면을 따라 중대를 빠르게 포 진시켰다. 쉰 명씩 스무 줄로 늘어선 중대가 팔부 능선쯤을 뒤덮 었다. 니어엘은 외쳤다.
“덧살 착용!”
니어엘의 이어진 명령에 따라 천 발의 아기살이 활에 걸렸다. 니어엘은 암살공의 본영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소환군 쪽을 가리켰다. 그쪽에서도 헨로 중대를 볼 수 있지만 별다른 방어 동 작은 보이지 않았다. 화살이 날아올 수 없는 거리였으니까. 하지 만 헨로 중대의 장기인 아기살은 보통 화살의 몇 배나 되는 거리 를 날아간다.
“발사!”
일제히 놓인 활줄들의 탄성음은 요란했지만 그 밖에 별다른 것 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장대한 전쟁가를 노래하고 싶어하는 노래꾼들을 설레게 할 장면은 없었다. 하지만 아기살의 무서움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눈 좋은 레콘들이라면 하늘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거무스름한 기운 같은 것을 볼 수 있었을 것 이다. 하지만 소환군의 구만 병력은 그것을 더 이상 대비할 수 없는 거리에서 가까스로 아기살을 발견했다. 끝까지 아기살을 발 견하지 못한 소환군의 병사들은 갑자기 쓰러지는 천 명의 전우들 을 보며 기겁했다. 소환군 사이에서 무서운 동요가 일어났다. 니어엘 또한 그들이 쏜 아기살의 궤적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소환군 사이에서 일어난 혼란을 보고 아기살이 적절한 방 향으로 날아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니어엘은 외쳤다.
“좋다! 명령 기다리지 말고 준비되는 대로 연속 사격!”
니어엘의 명령에 따라 헨로 중대원들은 보이지 않는 치명타를 전장의 하늘 너머로 계속해서 날려 보냈다. 과녁이 구만 명이나 되는 병력이니만큼 명중률은 말할 필요도 없이 좋았다. 또한 아 기살의 파괴력 때문에 한 발의 화살은 한 명의 사살을 가져왔다. 한 번 발사가 실시될 때마다 정확히 천 명씩 죽어 나가는 형편이 었다. 소환군은 방패를 머리 위로 쳐든 채 얼어붙었다.
소환군이 봉쇄된 것을 본 테룸 나마스 하장군은 호탕하게 웃고 북서쪽 산맥을 향해 경례를 보냈다.
“자, 우리 차례다! 가자! 폐하께서 나를 보신다!”
기병대들은 창을 높이 들어 올렸다.
“폐하께서 나를 보신다!”
파리조군을 돌파하느라 조금 줄어들었지만 나마스의 기병대는 아직도 사천오백 정도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마스는 그 병력을 이열로 배치했다. 사천오백 마리의 말이 발굽을 굴렀다.
“돌격!”
전장의 북동쪽으로부터 거대한 써레가 땅을 갈듯 제국 기병들이 흙먼지와 풀뿌리를 날리며 돌격했다. 그 정면에는 스카리 요 새군의 레콘 병사들이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달리는 말의 관통력이 레콘의 등을 꿰뚫었을 때 기병 돌격 예찬자인 시허릭은 잠깐이지만 황홀경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