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2장] – 모르는 것과 미루는 것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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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2장] – 모르는 것과 미루는 것 9


방만한 자세로 비스듬히 앉아 있던 암살공이 갑자기 상체를 일 으켰다. 호인의 얼굴에서 암살자의 눈이 번득였다. 힌치오를 똑 바로 바라보던 락토는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났다. 참모들은 기겁 하며 방패의 위치를 옮겼다. 락토는 한쪽 입술을 비틀어 올려 송곳니를 드러내었다. 

“그래. 해!”


힌치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자신이 보고 있는 사물 을 자신이 알고 있는 사물과 연결 지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총체적 무의미였다. 힌치오는 거북했다. 알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질퍽거리는 수렁도 반짝이는 수면도 그가 모르는 것이었다. 힌치오는 물이 무엇인지 몰랐다. 똑바로 선 채 힌치오는 자신이 아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의 상태는 미로에 갇혀 있는 것과 같았다. 무엇인지 모를 것이 주위를 틀어막고 있었다. 젖어 있는 레콘은 젖어 있는 레콘이 아 니었고 하늘에 떠 있는 하늘누리는 하늘에 떠 있는 하늘누리가 아니었다. 전장은 전장이 아니었고 힌치오는 힌치오가 아닐지도 모른다. 힌치오는 자신이 아는 것을 찾기로 했다. 눈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손은 무엇인가를 찾아내었다. 힌치오는 장님처럼 손끝의 감각에 집중했다. 쥔다는 동작이 정확히 무엇인 지는 알 수 없었지만 힌치오는 무엇인가 쥐고 있었다. 그것이 무 엇인지 알고 싶었다. 힌치오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알지 못했지만, 힌치오는 완전히 엉뚱한 방 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오른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 다. 힌치오는 당황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여러 번 고개를 움직 이는 시도를 했다. 몇 번 정도 머리가 아닌 다리나 다른 것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얼마 후 자신의 오른손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칼을 쥐고 있었다. 힌치오는 반가웠다. 그는 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낯설음의 세계 속에서 처음 발견한 낯익음이었다. 그것은 레콘의 무기였다. 최후의 대장간에서, 그 의 자부심처럼 녹슬지 않는 별로 만들어진 양손검이었다. 힌치 오는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는 이제 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늘누리의 나루터에서 부악타는 지켜야 할 황제를 내버려둔채 두 눈을 가리고 웅크려 있었다. 그리고 구레는 그런 부악타를 비난할 수 없었다. 그가 발작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 고마운 처지 였다. 구레는 혹 일어날지도 모르는 레콘의 난동을 걱정하여 치천제에게 말했다.

“폐하,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저것들이 미쳐서 환상 계 단을 만들어 내어 돌격할지도 모릅니다.”

치천제는 구레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으로 전장 한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구레는 황제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황제의 어깨 너머로 그녀의 시선을 쫓았다. 곧 구레의 눈이 수렁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레콘 에게 멈췄다. 까마득한 거리 때문에 구레는 조금 후에야 그 레콘 이 자신이 본 가장 큰 레콘임을 깨달았다. 감탄과 함께 구레는 약간의 동정심도 느꼈다. 틀림없이 자부심 강한 전사일 그 레콘 이 겪은 타격은 끔찍할 테니까. 그때 구레는 그 레콘에게 좀 기 묘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똑바로 서 있었다. 그 평범 한 동작은 낙수의 공격을 받은 전장에서 매우 이질적이었다.

황제가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 돼.” 

그리고 닐렀다. 

<쟁룡해 바닥에 처박혀 있어!> 

그 니름을 들은 데라시는 꽤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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