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4장] – 부드러운 돌, 단단한 바람 8
운하는 코네도 성을 향해 줄기차게 뻗어 갔다.
세상이 처음 만들어지는 시간을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여기엔 산을, 여기엔 호수를 만들자. 이곳엔 흘러 들어온 물이 모이는 진흙탕을 만들어 늦봄이 오면 개구리들이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 게 하자. 그리고 이곳엔 강을 만들자. 마치 그런 의지가 현실로 나타나듯 대지 위에 굵은 운하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운하 양쪽 으로는 파낸 흙을 이용하여 튼튼한 제방이 만들어졌다. 황당한 수준의 물리력이 서슴없이 동원되다 보니 복잡한 건축 기술은 별 로 필요 없었다. “파라!” 땅이 죽죽 패어 나갔다. “구보 시작!” 파낸 운하 밑바닥에서 레콘 여단들을 몇 번 뛰게 하면 그대로 달 구질이 되었다. 건축학과 수리공학에 뜻을 품은 자들이 보면 인 생 설계를 잘못했다는 공학적인 좌절감을 느낄 광경이었다. 그 대공사에 사용되는 도구들의 면면은 더욱 놀라웠다. 공사의 실무 책임을 맡은 오니 보는 병사들의 창검을 제작하고 수리하던 대장 장이들이 특별한 물건들을 만들어 내게 했다. 그에 따라 대형 방 패의 아랫부분에 금속 이빨이라 할 만한 것이 부착되고 양쪽에 긴 쇠사슬이 연결되어 레콘용 가래가 만들어졌다. 외발수레의 바 퀴를 떼어 낸 후 금속판으로 보강하고 손잡이를 달아 레콘용 삽이 제작되었다.
“파라!”
“구보 시작!”
운하에 충분한 수량을 공급하기 위해 두 개의 강이 흐름을 바 꾸게 되었다. 흐름이 바뀐 강 하류 지역의 발케네 인들은 꽤 황 당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물 흐름에 방해가 되는 지형을 변 경하기 위해 야산 몇 개가 사라졌다. 발케네의 지도 제작자들은 당분간 지도 제작을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형이 매일 변 경되니까.
공사의 진척 상황을 보며 감독을 맡은 오니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분명 제국의 토목공학사에 길이 남을 규모의 운하 공사 였지만 건축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내구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물론 운하의 엄청난 흔적은 오랜 세월 동안 남을 테지만 운하 자 체는 몇 년 내에 운하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그들이 만드 는 운하는 소화차에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제국군에게 적절 한 방어력을 주기 위한 것이었지 항구적인 수리 시설은 아니었 다. 따라서 오니는 토목공학보다는 전사학에 이름을 남길 것이 다. 자신을 공학자로 생각하는 오니는 그 사실이 만족스럽지 않 았지만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성인답게 곧 위안거리를 찾아내 었다. 오니는 갑충사들의 등 뒤에 앉아 공사 현장의 하늘을 날아 다니며 후세의 전사학자들이 틸러 달비의 이름은 몰라도 오니 보 의 이름은 알게 될 거라는 내용의 농담을 가장 통렬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코네도 성을 지척에 둔 거리에서 운하는 미리 예정해 둔 계곡 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 운하가 계곡과 연결된 다음 레콘 여단들 이 공사 현장에서 물러났다. 봉화가 올랐고, 두 개의 강에 건설 되어 있던 수문이 개방되었다. 물론 그 작업에는 인간 병사들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제국군이 만든 것이 마침내 대지 위에 아로새겨졌다.
까마득한 하늘 위에서 바라본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장관일 것이다. 세세년년 변함없는 지형이 느닷없이 변화되는 광경이었 으니까. 서로 멀찌감치 떨어진 두 강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는 대 지 위에 푸른 선을 남기며 뻗어 나갔다. 합류 지점은 세심한 계 산 하에 깊이 패어 있었으므로 범람은 없었다. 경쾌한 속도로 흘 러간 강물은 코네도 성 근처에 도달한 후 계곡 쪽으로 머리를 돌 렸다. 곧 우레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계곡 바닥을 향해 떨어 지는 거대한 폭포가 나타났다. 폭포 위에 걸리는 무지개를 보며 오니는 그만 눈물이 찔끔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강을 만들어 내었다.
시허릭 마지오 상장군은 조용히 먹을 갈았다. 벼루에 먹물이 흥건하게 고이자 그는 종이를 펼쳐 일필휘지로 글을 써내려 갔 다. 먹물이 마르길 기다려 그것을 고이 접은 다음 시허릭은 기다 리고 있던 니어엘 헨로 수교위에게 주었다. 최고 사수의 자격으 로 대기하던 니어엘은 그것을 화살에 묶었다. 아기살을 쓰지는 않았다. 덧살을 쓰는 아기살에는 종이를 묶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어엘은 식인 부위라는 아름다운 별호를 쓰는 맥키 네미 부위의 강궁을 빌려온 참이다. 화살이 시위에 걸리고 힘껏 잡아 당겨졌다. 그리고 화살은 낮하늘에 뜬 별이 되었다.
화살은 대단한 거리를 단숨에 날아갔기 때문에 시력이 변변찮 은 자들은 화살의 궤적을 쫓기 어려웠다. 그러나 코네도 성에서 는 유성처럼 날아오는 화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화살에 묶여 있던 편지는 몇 사람의 손을 거쳐 발케네 공 락 토 빌파의 손에 들어갔다. 락토는 종이를 펼쳤다.
항복은 군인의 불명예지만 지배자에겐 과감한 결단일 수도 있습니 다. 문 앞에 도달해 있는 운하를 보십시오.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이 각하는 지셨습니다. 불행을 자초하지 마십시오. 침착하게 생각하면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을러메는 짓은 통하지 않습니다. 쏘아진 화살 이 하늘을 덮은 후는 이미 늦습니다. 아쉬운 마음 한량없음을 짐작합 니다. 주먹으로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손을 펴 들어 올리면 하늘의 그분이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