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4장] – 부드러운 돌, 단단한 바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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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3권 : 유혈의 지배자 [14장] – 부드러운 돌, 단단한 바람 7


“그래서 여쭙는 건데, 여자를 좋아하십니까, 형님?”

율형부사 사라말 아이솔은 동생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파라말 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장난기를 싹 사라지게 만드는 대답을 했다.

“다른 남자를 찾아봐.”

“……제가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라말은 게으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파 라말은 좀 더 부정하고 싶었지만 주장을 덧붙여 봐야 더 괴상하 게 꼬여서 되돌아올 것임을 알기에 관두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사라말이 들여다보고 있는 서류에 관심을 두었다.

“집까지 무슨 일감을 가져온 겁니까?”

“전범 때문에 정리할 일이 있구나.”

“예? 벌써 발케네 전쟁의 전범을 정하는 겁니까?”

“아니. 규리하다.”

“아아.”

“규리하 공 비셀스께 보낼 물건이다. 떠나오기 전에 전해 드렸 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군. 별로 대단한 것은 없다. 대장 군이 대부분의 죄인에 대한 처벌은 끝냈으니까. 다만 몇 가지 미진한 항목이 있긴 하다.”

“예를 들자면?”

“아이저 규리하와 이이타 규리하에 대한 항목.”

정우의 아버지와 남동생이다. 파라말은 미진한 것이 아니라 곤란한 항목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되죠?”

“물론 사형이지.”

“규리하 공 비셀스가 아버지와 남동생의 사형을 주관해야 하는 겁니까?”

“설마. 반역자는 폐하께서 처벌하신다. 나는 공에게 아버지와 남동생을 위해 항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알려 주는 거야.” 

“반역에도 항소가 가능합니까?”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변경백령의 특징 때문에 좀 까다 롭다. 너도 알겠지만 고아라짓 왕국 시절 변경백령은 왕의 힘이 미치기 어려운 곳에 설치되었지. 그 때문에 변경백은 자기 땅에 대한 사법권을 가진다. 그리고 아라짓 제국은 현재의 법과 충돌 하지 않는 한 고아라짓과 신아라짓의 법률을 인정한다. 그런데 법리 해석 결과 아무래도 변경백령의 법 서열은 공작의 그것보다 더 높은 것 같다.”

“더 높다고요?”

“그래. 변경백은 험지를 다스리기 때문에 현지 사정에 따라 자 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던 것 같다. 따라서 반 역자에 대한 항소권도 인정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군. 항소는 가능하겠지만 판결은 바뀌지 않을 테니 까. 항소는 변경백의 권위를 인정해 주기 위한 절차가 될 거야.” 

“재미있군요. 그러면 발케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스카리 빌 파는 탈옥 교사죄입니까, 납치입니까?”

“탈옥죄라는 것은 없다. 도주죄라고 하지. 그리고 탈옥 교사죄라는 것도 없다. 도주 원조죄라고 해야겠지. 그리고 스카리 빌파라면 순진죄다.”

파라말은 웃었다.

“왜 순진죄지요?”

“산공부사의 손에 놀아났으니까.”

파라말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사라말은 서탁 뒤에서 차분 한 눈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묻지 않았지만 네 경우에 대해서도 알려 주지. 부냐 헨로 도 주 사건에서 네 역할은 법률에 의해 체포 구금된 사람의 도주를 야기하거나 용이하게 한 것에 해당하므로 도주 원조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하늘누리 위였으니 규리하의 법 대신 폐하의 법으로 처벌된다. 10년 이하의 징역이지.”

파라말은 약간 창백한 얼굴로 형을 쳐다보았다. 비록 그가 사 라말의 동생이었으나 형이 농담을 하는 것인지 진담을 하는 것인 지 알 수 없었다. 파라말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가 스카리 빌파의 집에 드나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핑계가 뭐였나?”

“바둑을 가르쳤습니다.”

“재미있군.”

“농담이 아닙니다. 스카리가 정말 그렇게 요청했습니다.”

파라말은 스카리 빌파가 왜 바둑을 배우고 싶어했는지 설명했다. 사라말은 잠시 회상하는 얼굴을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몇 년 동안 네 자금 사정이 괜찮았던 것 같군. 봉급 내놔.”

“형……님.”

“목적이 이 전쟁이었냐?”

“예? 아, 아니요. 아닙니다. 엘시 에더리 파혼 작전이라고 해야겠군요. 이 전쟁은 저도 뜻밖입니다.”

“용에게 날개를 주려는 것이었군.”

언젠가 비슷한 말을 들었던 스카리와 달리 파라말은 사라말이 말하는 용이 누구인지 짐작했다. 사라말은 계속 말했다.

“그리고 지금 이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용근을 탐내는 자들을 쫓아내는 일이고. 그렇다면 너와 비스그라쥬 백 모두 폐하께 조종당한 것인지도 모르겠군.”

“비, 비스그라쥬 백이오?”

“다른 남자 찾아보라니까.”

“예?”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내숭 떠는 건 아직도 나를 노린다는 뜻이잖아.”

파라말은 입을 다물었다. 사라말은 선고하듯이 말했다.

“네가 혼자 그 일을 꾸몄을 리 없고, 누구랑 손발을 맞췄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그러니 내숭은 그만둬. 그런데 내가 보기에 백작과 너는 모두 폐하께 조종당한 것 같군. 그러니 네 도주 원조죄는 원인 무효다. 무죄.”

“감사합니다. 앞으로 똑바로 살겠습니다.”

“그래. 봉급 삭감당한 형에게 돈도 좀 나눠 주고.”

“집요하시군요. 그런데 이 모든 것 뒤에 폐하가 계시다는 것은 확실합니까?”

“아니, 그냥 짐작이다.”

파라말은 맥이 빠졌다. 하지만 사라말이 아래쪽을 바라보는 시늉을 하며 말했을 때 그는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떻게 레콘 여단들이 왔는지는 알 것 같군.”

파라말은 자신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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